[김정수의 해피 톡톡] ‘장애인’과 ‘장애우’, 그 차이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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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티가 너무 안 나네. 누가 장애인인지 모르겠어.” “1면에 장애인이 좀 많아 보이나?”

이번 ‘행복동행’을 만들면서 기자들과 주고받은 대화 중 일부입니다. 1면 커버스토리로 아테네국제마라톤에 참가하고 돌아온 장애인마라토너들에 관해 쓰기로 하고, 사진을 고르면서 나눈 이야기입니다. 혹시라도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로 느껴졌다면 용서해주세요. 그저 사진 한 장으로도 그들의 아름다운 도전에 대한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면서,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자 고민했던 것뿐입니다.

사실 장애인에 관해 취재를 하거나 기사를 쓰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장애인들의 고충을 널리 이해시키고 싶다는 의욕만 앞서, 오히려 제 자신이 취재 대상 장애인에게 생각지 못한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비장애인의 관심을 무조건 값싼 동정심으로 매도하는 장애인의 날 선 비난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특히 평범하게 살아오다가 사고 등으로 갑자기 장애를 갖게 된 ‘중도장애인’들은 저의 무심한 말 한 마디에도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곤 했습니다. 6년 전 캐나다에 출장갔을 때 일입니다. 일행 중에 대학생 시절의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은 여성이 있었습니다. 여동생 같이 느껴져 다가서고 싶었지만, 그녀는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괜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한테 상처를 많이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함께 나이아가라폭포에 갔을 때, 전 시각장애인의 느낌은 또 다를 거란 생각에 무심코 감상을 물었습니다. 그게 그녀의 자존심에 비수를 꽂았던 겁니다. 무슨 대답을 원하느냐고, 싸늘하게 내쏘는 그녀의 말에 전 당황했습니다. 이후 저와 거리를 두는 듯한 그녀를 보며 전 오래도록 미안했고, 한동안 장애인을 대하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만나 본 장애인들 대부분이 제일 싫어하는 태도 중 하나가 ‘동정’입니다.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의 차이를 고려하며 행동하는 것이 ‘배려’라면, 스스로 뭔가 우월하다 느끼고 상대를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려는 게 ‘동정’입니다. 그 미묘한 차이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어 하나에도 드러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장애인’과 ‘장애우’, ‘비장애인’과 ‘정상인’이라는 표현입니다. ‘장애를 가진 친구’라는 뜻의 조어인 ‘장애우’는 정감있게 들려 언론에서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장애를 가진 여러 지인들에게 확인해 본 결과 대다수 장애인에게는 거부감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괜히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느낌을 준다는 겁니다. 장애인끼리, 혹은 손위의 장애인에게는 사용하기 힘든 표현이라는 점도 그 단어의 한계라고 했습니다. 그냥 법적 공식 명칭인 ‘장애인’으로 부르는 게 가장 적절합니다. 또 ‘정상인’도 삼가야 할 단어입니다. 상대적으로 장애인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는 12월 3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장애인의 날’입니다. 우리나라 장애인의 인권·복지수준은 여전히 열악합니다. 하지만 정책이나 시스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캐나다 토론토에는 승강기 없는 지하철역도 있었지만 거리에선 휠체어를 타고 웃으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수없이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그것부터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혹시라도 이 칼럼, 이 섹션 어딘가에 그런 배려가 부족한 표현이 있었다면, 슬쩍 귀띔해 주세요. 또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요.

김정수 행복동행 에디터, 가천대 세살마을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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