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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통일에서 큰 통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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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안착히
JTBC 정치부 차장

23일 카타르 도하에서는 ‘작은 통일’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 탁구 친선경기인 ‘피스 앤드 스포츠컵’에 출전한 유승민(남한)-김혁봉(북한)조가 남자복식 결승에서 미국-러시아 조를 꺾고 우승했다. 두 선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부둥켜 안았고, 현정화 대한탁구협회 전무와 이정식 북한 대표팀 감독도 악수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이 대회가 친선경기이고, ‘작은 단일팀’이긴 하지만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20년 만에 남북 탁구가 다시 뭉쳐 쾌거를 이룬 셈이다.

 일주일 전 서울. 한·독 통일자문위원회 창립기념식이 열렸다. 한국과 독일의 통일 관련 전·현직 정부 관계자와 중진 학자들로 구성된 모임이었다. 독일 연방내무부 정무차관인 크리스토프 베르크너와 동독의 마지막 의회 사민당의 원내총무였던 리하르트 슈뢰더는 각각 연설에서 남북한은 통일을 위해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베르크너 차관은 “동서독 주민들의 대다수가 분단 상황에서도 서로 접촉했다”며 “제한적이긴 했지만 동서독 주민의 상호 방문, 편지 왕래, 문화·연구·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통일 전에도)동독 주민들이 서독 방송을 매일 저녁 즐겨 봤다”는 슈뢰더 전 원내총무는 “서독 텔레비전을 하도 많이 봐서 동독 장관보다 서독 장관들 이름을 더 많이 알고 있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교류했음에도 1990년 통일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서독 출신 간의 이질감은 독일의 과제로 남아 있다.

 독일의 통일 모델에서 영감을 얻고, 성공한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통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당위론만 들먹이며 정작 실천에 옮기는 것을 두려워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이산가족 문제만 해도 그렇다. 최근에 만난 이산가족 2세들은 만나자마자 답답함을 호소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부모님의 평생소원인 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을 이뤄드리지 못해 가슴이 천근만근이라는 것이다. ‘인도적인 문제는 정부 간의 이슈와 분리해서 취급한다’는 정부의 정책이 말뿐인지 그들은 묻고 있다. 남한 정부의 의지만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이 모를 리 없다. 다만 너무 오래 남북 간 교류가 단절됨을 답답해하는 것이다.

 통일정책이라는 거대 담론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정부는 곧 통일재원 마련 계획을 법제화 할 예정이다. 한·독 통일자문위원회 독일 위원들은 이 계획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통일재원 계획만큼 중요한 것은 남북 간 민간 교류의 확대다. 최근에 여러 분야에서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이번 탁구대회도 그중 하나다. 남한 텔레비전을 보는 북한 주민들이 늘어난다는 소식은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일단 자주 만나야 물꼬가 트인다. 우리도 ‘언젠가’는 통일될 것이다. 60년 이상 떨어져 산 사람들을 어느 날 갑자기 함께 살라고 하면 얼마나 힘들까.

안착히 JTBC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