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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EEKLY]투사처럼 힘 전파하는 강인한 섹시함-김혜수

중앙일보

입력

▶ 노 브라로 행사장에 나타난 그녀

‘김혜수의 플러스 유’가 사라진다니 섭섭하다.
김혜수(30)
가 토크쇼의 MC를 맡아 23개월을 했으니 참 대단하다. 김혜수는 최선을 다했고 23개월 동안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은 더없이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김혜수에게 참 좋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김혜수는 참으로 오랫동안 우리곁에 있어줬다. 김혜수의 데뷔작은 영화 ‘깜보’였다. 그때만 해도 한국 영화는 파리를 날리는 극장에서 애국심으로 보았다가 ‘역시’ 하고 후회하며 나오던 시절이었다. 국산영화를 볼 이유가 없던 나는 참으로 우연히 태권소녀로(김혜수는 실제로 태권도 유단자로 네이밍을 하고 데뷔했다)
나온 김혜수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되었다. 풋풋하고 그러나 힘이 느껴지는 모습을 보고 ‘큰 물고기’라는 감을 잡았던 기억이 있다.

김혜수는 과연 큰 물고기로 컸다. 아마도 ‘사모곡’이나 ‘순심이’ 등 10대의 김혜수가 뿜어냈던 무르익은 여성성을 많은 이들은 기억할 것이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 김혜수는 꾸준히 우리 곁에 있었다. 마치 모범생처럼 김혜수는 연예계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고 그리고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15년 가까운 시간을 그녀는 나를, 우리를 물리지 않게 하면서 강인한 매력으로 끌어당겨왔다.

이 김혜수의 매력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섹시함이라고 말할 듯싶다. 내가 잘 아는 일본 특파원은 김혜수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방송기자인 내가 마치 전지전능한 능력을 지닌 줄 오해하고 “전상, 김혜수씨를 한번 만날 수 없을까요?”하고 몸부림을 치곤 했다. 김혜수와 일면식도 없고 결코 ‘마담 뚜’는 될 수 없다는 내 의지로 그는 몸부림만 치다 일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가 말했던 김혜수에 대한 ‘여성론’은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아이보리비누 선전에 나오는 통통한 여자아이 같은 성적 매력이 넘친다”는 것이었다. 동그란 눈, 자연산이 분명한 마음씨 좋아 보이는 코, 거칠어 보이는 도톰한 입술…. 다듬어지지 않은 이 거친 자연미는 남성에게 묘한 상상을 준다고 했다. 저 여자를 껴안으면 마치 미성년의 아기를 껴안는 듯한 순수함과 편안함이 있을 것 같다는. 하기는 나도 김혜수를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내가 김혜수를 처음 본 것은 연극배우 손숙씨가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한 피로연에서였다. ‘짝’이란 드라마에서 손숙씨의 막내딸로 나왔던 김혜수는 그날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무척 놀랐다. TV에서 본 김혜수의 느낌이 그대로 ‘오프라인’에서 나타나서 놀랐다. 우선 키가 컸고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원피스를 입은 김혜수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일제히 그녀의 포로가 되었다. 물론 나 역시 그랬다. 솔직히 아찔했다. 그녀는 노 브라였다.

그리고 터질 듯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쓰신 책을 읽었어요”라고. 나로서는 이렇게 놀라운 말은 없었다. 내가 쓴 책까지 읽었을 정도라면 이 아가씨는 책을 엄청나게 읽는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한 일본 연예 평론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모든 여배우는 기대를 배반한다고. 스크린에서 성적 매력이 철철 넘치는 여배우를 직접 만나면 거의 중성에 가까운 무뚝뚝한 경우가 많은 반면 소년적인 캐릭터로 뜬 여배우를 만나면 착착 감기는 교태파였다고. 여배우가 지닌, 배우라는 직업이 지닌 이중성을 시사한 말이었다.

▶ 자신의 성적 에너지를 즐기는 여자

그런데 김혜수에게는 이 이중성이 없었다. 김혜수는 즐기고 있었다. 자신의 성적인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을. 각종 영화제에서 김혜수가 입고 나온 과감한 드레스는 당당한 성적 매력의 표현이었다. 또한 폭발적인 김혜수의 성적 에너지에 사람들이 아찔해 하면 김혜수는 슬쩍 몸을 비틀어 다시 한번 보여 주었다. 또 두 손을 모아쥐어 풍만한 젖가슴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나는 김혜수를 보며 김혜수의 섹시함은 참으로 특별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당당함, 순진무구함, 장난스러움, 그리고 자연스러움이 터질 듯한 섹시함이었다. 보는 이의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섹시함이자 동성의 여자 눈길도 빼앗는 강력한 경쟁력의 섹시함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혜수의 섹시함의 원천은 강인함이다. 상처받을 듯한 연악함, 스러질 듯한 퇴폐적 매력이 아닌 건강하고 씩씩한 성적 매력은 때로는 투사처럼 여성들에게 힘을 전파한다.

김혜수는 훌륭한 배우다. ‘첫사랑’의 사랑스러움, ‘닥터 봉’의 귀여움, ‘곰탕’이나 ‘국희’에서 보여준 당참, 그리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나 ‘그 여자의 남자’등에서 보여 줬던 비련의 주인공(이 역은 잘 안 맞는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까지 다양한 캐릭터의 소화는 ‘여배우 김혜수’로서 확실한 검증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혜수의 한 여성으로서 매력이 단연 돋보였던 것은 토크 쇼 ‘김혜수의 플러스 유’였다. 나는 수요일 밤이면 김혜수와 데이트 하듯 그 쇼를 즐겨 봤다. 섹시하고 사랑스러웠지만 무엇보다도 두뇌회전이 뛰어났다.

대본에 없는 애드립을 처리하는 솜씨는 물론이고 출연한 게스트를 받아들이고 밀어내며 이야기를 엮어내는 능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평소의 책읽기와 사람에의 끝없는 호기심과 관찰력이 기반이 된 배우로서 ‘재생산’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거침이 없었다. 아슬아슬한 옷의 어깨끈이 내려오면 “왜 이러죠?” 하며 올리는가 하면 초대손님이 웃기는 말을 하면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내내 웃어버렸다. 웃기 좋아하고 낙천적이고 밝은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 속에 시청자들은 수요일밤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반면 은근히 할말을 하고 넘어갔다. 공주표 내지 모범생표로 유명한 한 여자 방송인이 나와 “저는요. 진짜 모범생이었어요. 선생님이 30센티미터 이상 거리를 두고 책을 보라고 하면 저는 딱 30센티…”라는 말을 하자 김혜수는 중간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 동생 같으면 벌써 쥐어터졌겠다”라고. 시청자가 하고픈 말을 대신하는 능력만큼 방송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없다.

또한 김혜수는 ‘성의 문제’를 ‘순수한 자연’의 문제로 풀곤 했다. 다른 사회자들처럼 묘하고 끈끈하게 이끌지 않았다. 남자들의 성적 표현을 이야기할 때 그녀가 말했다. “제 동생이 군대갔는데 너무 추웠나 봐요. 편지에 ‘누나, 고추가 탱탱 얼었어’라고 썼더라고요”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녀처럼 시청자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야한 이야기’를 들었다.

김혜수의 플러스 유는 누가 나오느냐에 관계없이 김혜수의 웃음과 드러낸 어깨와 순발력으로 족했다. 한 여배우로서 김혜수는 이미 ‘ID’를 얻었다. 이 토크 쇼에서 김혜수는 우리에게 아주 귀한 선물을 했다. 그 선물은 바로 ‘건강한 섹슈얼리티’이다. 김혜수만의 건강한 성적 매력은 강인하고 귀엽고 순수했다. 그리고 두뇌가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다. 스스로가 만족한 섹슈얼리티였고 인간의 성적 특성이라는 굴레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었다.

김혜수는 생물학적인 성(섹스)
에서 사회적인 성(젠더)
의 경지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업그레이드했다. 23개월 동안 그녀는 분전했고 우리는 박수를 보낸다. 오랫동안, 그리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준 ‘아름다운 그녀’에게 감사한다. 그녀의 실생활의 공간도 강인하고 낙천적이고 밝음으로 가득 차길 바라며….

방송인 전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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