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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처럼 생활한 선생님들,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제자 60명 대학 보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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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인명여고 3학년생들이 2009년 입학하면서 치른 3월 모의고사 성적은 인천지역 81개 고교 중 55등이었다. 2006년 개교한 서울 효문고는 지금까지 수시모집으로 대학에 간 학생이 8명에 불과했다. 입학사정관 전형 합격생은 단 1명. 그런데 이 학교들이 올해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일(?)을 냈다.

글=최석호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최명헌 기자

인천 인명여고가 올해 대입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서울 소재 대학에 60여 명의 합격생을 낸 건 강인실 3학년 부장(오른쪽에서 둘째)을 주축으로 한 교사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진=김진원 기자]

30~40대 담임교사 모여 장기 계획 세워

올해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현재까지 60여 명의 학생을 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시킨 인천 인명여고. 이 학교가 새로운 ‘도전’에 나선 건 2009년 강인실(45·화학과) 교사가 3학년 부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다. “논술 전형이나 학생부 전형은 상당수 대학이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적용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애들이 모의고사를 보면 2개 영역 2등급 이상인 경우가 1개 학년 600명 중 10명 정도밖에 안 돼요. 대학에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사정관 전형’뿐이라고 생각했죠.” 강 교사는 열정 있는 30~40대 젊은 교사들을 3학년 담임으로 배치하고, 입학사정관 전형을 향한 장기플랜을 세웠다.

입학생들의 학업수준이 높지 않다 보니 교외 대회나 올림피아드에서 수상실적을 올릴 수 없는 상황. 3학년 교사들이 모여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각종 교내 동아리를 만들었다. 수학 심화과정을 공부하며 특정 개념을 일상생활에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수학동아리’, 과학서적을 읽고 영어로 토론하는 자연계 학생 동아리 ‘ESC(English Science reading Cafe)’, 토론동아리 ‘미네르바’ 등 현재 학교에 등록된 동아리 수만 35개다. 논문이나 토론활동 기록처럼 동아리 활동과정에서 나온 성과물은 책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실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 연세대 진리자유 전형으로 노어노문학과에 우선 선발된 김담이양은 자기소개서에서 “토론 동아리 미네르바를 직접 개설하고, 토론집의 표지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창의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

이 학교 3학년 교사들의 퇴근시간은 오후 11시다. 여름방학도 없다. 학생들과 상담하고, 교사들끼리 모여 대학별 입학사정관 전형의 특징과 합격선에 대해 토론하다 보면 정시퇴근이란 불가능하다. 교사 1명당 7~8개 대학을 맡아 전형을 분석하고 졸업생을 불러 ‘면접에서 어떤 질문이 나왔는지’ 정보를 수집했다. 한 달에 한 번은 교사 워크숍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공유했다. 6월 입학사정관 전형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를 작성할 때부터는 학생 1명당 3~4시간씩 상담하면서 서류에서 강조해야 할 내용을 뽑아내느라 점심·저녁식사도 교무실에서 해결했다. 5층 교무실에서 식당까지 오가는 10~15분이라도 아끼기 위해서였다. 송현창(40·중국어과) 교사는 “입학사정관 전형의 경우 한 학생이 여러 대학에 지원하기 때문에 한 해 평균 50~60장의 추천서를 쓴다”며 “자정이면 학교 정문을 닫기 때문에 입시철에는 학교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3학년을 담당하는 3년 동안 원형탈모증이 생겨 베레모를 쓴다.

 입학사정관 전형 합격생들이 합격 비결로 꼽은 게 있다. 모의면접이다. 3학년 초부터 사정관 전형 지원자를 대상으로 주당 2차례 면접요령을 강의하고, 시사 이슈를 모아 수업을 했다. 여름방학 이후로는 교사 3~4명이 참여해 1주일에 2~3차례 10명 단위로 모의면접을 실시한 뒤 학생 개개인의 단점을 보완하는 훈련을 했다. 한국외대 21세기인재 전형에 합격한 박재율(한국어교육학과)양은 “자기소개서에서 강조한 내용이 면접질문으로 어떻게 응용될지 파악할 수 있었고, 수차례 실전경험을 통해 면접현장에서의 긴장감도 덜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교 3년 동안 함께 공부하고 활동한 서울 효문고 자기주도적 통합 학습동아리 ‘집현전’ 학생들. 이들 동아리 회원 8명 중 7명이 올해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했다. [사진=최명헌 기자]

자기주도학습 동아리로 대입 성공

서울 효문고엔 회원 수 8명의 작은 동아리가 있다. 자기주도적 통합 학습동아리 ‘집현전’이다. 이 동아리 회원들은 고교생활 동안 학원 한 번 다니지 않았다. 지역 특성상 회원들의 가정형편도 넉넉지 않다. 1학년 때부터 모여 함께 활동하고 공부한 게 전부다. 그런 회원 중 6명이 입학사정관 전형에 최종합격했고, 1명은 현재 합격생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이 모임은 “책이나 실컷 읽어보지 않겠느냐”는 강윤정(44·국어과) 교사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1년에 책 100권 읽기’를 목표로 8명의 학생이 모였다. 대학들이 올린 ‘필독도서’ 목록을 토대로 1년 동안 읽어야 할 책 100권을 학생들이 직접 선정한 뒤 매달 10권을 구입해 돌려 읽었다. 학생 1명당 1주일에 3권을 기본적으로 읽은 것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독서감상문을 썼고, 월말에는 그 달 읽은 책의 내용을 토대로 토론을 했다. 회원들이 책을 읽은 뒤 느낀 점과 토론과정을 정리해 엮은 독서기록장만 A4 용지 230쪽 분량, 책 10권에 달한다. 중앙대 다빈치형인재 전형으로 공공인재학부에 합격한 안은진양은 “다양한 소재·장르의 책을 접하면서 배경지식이 넓어졌고, 친구들과 주기적으로 토론하면서 나의 생각을 남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법을 배운 게 면접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평소 펀드투자에 관심이 많았던 김환진(경희대 네오르네상스 전형 최종합격)군은 지난해 초 ‘금융수기 공모전’에 참가할 것을 제안했다. 2개월 동안 준비해 그해 5월 ‘청소년의 금융생활,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가’를 주제로 한 수기를 공모전에 출품해 이 동아리가 대상을 받았다. 금융 관련 특강을 쫓아다녔고, 여의도 금융가로 나가 ‘청소년에게 금융활동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물이었다. 같은 해 법무부가 주최한 ‘전국고교생 모의재판 경연대회’에서도 대상을 받았다. 2개 대회에서 받은 상금 320만원은 독거노인과 극빈자들이 입원해 있는 성가복지병원에 기부했다. 그 일이 계기가 돼 일요일마다 3시간씩 병원을 찾아 환자들에게 밥을 먹이고, 목욕을 돕는 봉사를 하고 있다.

내신 1.001등급으로 연세대 진리자유 전형에 우선선발 된 진종일군은 2학년 때 어머니로부터 “동아리 활동에 시간 뺏기지 말고, 공부에 집중하라”는 꾸중을 들었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아들이 걱정됐던 것이다. 그 얘기를 접하고 강 교사가 나섰다. “성적이 떨어지면 동아리를 유지할 수 없다.” 학생들을 설득해 각종 활동 외에도 공부를 목적으로 한 ‘자기주도적 학습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후 학생들은 매 수업시간 이후 쉬는 시간을 쪼개 그 시간에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5분 노트’를 만들었고, 정규수업이 끝난 뒤에는 하룻동안 공부한 내용을 줄글 형식으로 적은 ‘학습일기’를 돌려보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다. 방학 중에도 강 교사는 공부할 곳이 없는 학생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시켰다. 식사 값과 간식비는 물론 그의 몫이었다. 그 결과 2학년 때까지 모의고사 언어영역 백분위 90~96%를 오갔던 진군의 성적은 이번 수능 가채점 결과 만점이 나왔다. 양선영(가천대 경원캠퍼스 영프런티어 전형 최종합격)양은 1학년 때 5.6등급이었던 성적을 2학년 때는 4.2등급, 3학년 때는 3.4등급으로 끌어올렸다. 양양은 “친구들끼리 모여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다 보니 어떤 일이든 ‘해내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며 “서류작성이나 면접단계에서도 ‘뭐든 혼자서 할 수 있는 자신이 있다’는 점을 내세웠던 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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