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원자 1개 두께 반도체 전극 개발 … 메모리 ‘꿈의 20나노 시대’ 20년 앞당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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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조병진 교수(앞줄 가운데) 교수와 연구에 참여한 신우철·박종경·송승민 대학원생(뒷줄 왼쪽부터).

차세대 플래시메모리 반도체의 용량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꿈의 기술이 개발됐다. 이에 따라 20년 뒤나 상용화할 것 같던 20㎚(나노미터, 10억 분의 1m) 선폭(線幅)의 차세대 플래시메모리를 조만간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핵심 기술은 ‘그래핀의 마술’로 통한다. 전극(電極)을 금속에서 그래핀으로 바꾸면서 용량 확대의 기술적 난제들이 해결된 것이다.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조병진 교수팀은 플래시메모리뿐 아니라 어느 반도체 칩에도 사용할 수 있는 그래핀 전극을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세계 플래시메모리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나노 레터스’ 22일자에 발표됐다.

 현재 플래시메모리의 선폭은 30나노미터 정도다. 선폭을 20나노미터로 가늘게 하면 반도체 저장 용량이 두 배로 늘어난다. 지금의 기술로도 선폭은 그만큼 가늘게 할 수 있지만 반도체 내부의 정보를 저장하는 트랜지스터(셀) 간에 간섭이 일어나는 문제가 발생한다. 물(정보)이 옆방으로 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더구나 정보를 10년 이상 저장할 수 있어야 플래시메모리를 시판할 수 있는데 차세대 플래시메모리의 지금 기술 수준은 겨우 9시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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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 기업이나 연구소들이 개발하고 있는 차세대 플래시메모리용 금속 전극은 100~150나노미터로 너무 두껍고 무겁다. 또 서로 다른 금속을 쌓아 놓아 열을 받으면 팽창하는 양이 서로 달라 그런 문제들이 일어난다.

그래핀 전극이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했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 한 개 층이 벌집 형태로 이어진 0.3나노미터 두께로 극도로 얇아 있는 듯 없는 듯할 정도다. 그래서 그래핀 아래에 있는 알루미늄 산화막이나 질화실리콘막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반도체 내부에서 전자를 운반하는 데 드는 에너지를 그래핀이 금속 전극에 비해 아주 작게 소모하는 것도 플래시메모리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한 것으로 조 교수는 분석했다.

 조 교수는 “단지 전극 물질만 바꿨는데 이런 정도의 변화를 가져올지 상상도 못했다”며 “당장 공장에서 생산에 나서도 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공장 공정을 대부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을뿐더러 되레 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과학계는 플래시메모리의 용량을 높이기 위해 내부의 셀을 이중 삼중으로 쌓는 방법도 내놓았지만 만들기가 여간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게 아니었다. 그래핀 전극은 그럴 필요 없이 기존 반도체 공정으로 평면에 셀을 배치하면서도 용량을 크게 할 수 있다.

 그래핀 전극은 플래시메모리에서 정보를 읽고 쓸 때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전압의 차이도 70% 정도로 더욱 크게 벌렸다. 전압 차이는 클수록 좋다. 이번 그래핀 전극의 개발은 그래핀의 상용화 기술을 개발했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그래핀 전극의 연구는 기초 연구가 대부분으로 상용화와는 거리가 멀었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그래핀(Graphene)=흑연의 표면 원자 층을 한 겹만 떼어낸 탄소 물질. 전도성이 아주 좋고 강해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지난해 영국의 과학자들이 그래핀 분리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플래시메모리(Flash Memory)=전원이 공급되지 않아도 저장된 정보를 계속 유지하는 컴퓨터 기억장치의 일종이다. 스마트폰·노트북·디지털카메라 등 각종 전자장치에 폭넓게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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