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희의 시시각각] '北김정은 개인비서' 3개월 만에…허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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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선희
논설위원

최근 국내 한 인터넷 매체가 ‘북한 김정은의 부인’이 공개됐다는 기사를 올렸다. 중국 통신사를 인용한 보도였는데, 이 기사의 사진을 보곤 한마디로 ‘허걱~’했다. 주인공이 국내 레이싱 모델 주다하였기 때문이다. 그를 금세 알아본 연유는 이랬다.

 올 8월, 중국 포털들의 검색어 순위에 ‘김정은 개인비서’가 오른 적이 있다. 그때 게시됐던 사진이었다. 한데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 사진은 미니스커트 교복을 입은 자태에서 연예인 화보 느낌이 확 났다. 이에 온라인 중앙일보(joongang.co.kr)가 확인 작업에 들어가 그 인물이 주다하임을 밝혀냈다. 그런데 3개월 만에 이번엔 부인으로 둔갑해 다시 부활한 거다.

 그런가 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네 번째 부인이라는 사진이 중국 포털에 쫙 깔렸다. 이 사진은 확인작업도 필요 없었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이 북한 방문 당시 김 위원장과 나란히 찍었던 사진이다. 당시에 이런 사실을 보도했지만 중국포털에서 해당 정보는 여전히 검색되고 있다.

 일차적으론 중국 인터넷에 기가 막힌다. 그럼 한국 인터넷 사정은 더 나을까. 꼭 그렇진 않다. 오히려 한 단계 더 나아가 진위판단을 요하는 경우가 많다. 이달 초 김을동 미래희망연대 의원이 옛 가족사진을 공개하며 도올 김용옥 교수에게 사과를 촉구했다. 이유는 김 교수가 1990년대 한 잡지에다 김 의원 부친인 김두한 전 의원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이를 토대로 인터넷에서 유사한 소문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비를 아비라 증명하느라 20년 가까이 고통 받았는데, 또 훗날 누군가 이 정보를 토대로 “네 아비의 아비는 누구냐”고 물어올 수 있어 괴롭다는 거다.

 그런데 이게 바로 인터넷이다. 한 번 입력된 정보는 자체 기억력과 번식력으로 지워지지 않는 곳. 정보는 흡수하되 판단하지 않으므로 거짓정보도 한 번 새겨지면, 고쳐지지 않은 채 번식과 유포가 자동으로 일어난다. 거칠고 험한 욕설과 모함, 선동에 대한 제지도 없다. 이에 많은 사람은 말을 배설하는 ‘뒷간’처럼 인터넷을 사용한다. SNS의 속성도 이와 다르지 않다. 혹자는 말한다. 틀에 박힌 이 위선적인 세상에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숨쉬고 사느냐고. 일리 있다. 그런데 누구도 자기 배설물을 남들 앞에 진열하진 않는다. 말의 배설물 처리도 이와 다르지 않아야 한다. 이유가 있다.

 먼저 개인적 이유. 요즘 직원 채용 시 구직자의 과거 인터넷과 SNS 흔적을 뒤지는 ‘온라인 뒷조사’를 하는 기업이 는다. 배설물로 건강상태를 체크하듯, 그가 배설해 놓은 말로 심성과 인격을 알 수 있다는 거다. 철없던 때 올렸던 인터넷 게시물에 뒷덜미를 잡히는 것이다.

 과학적 이유. 뇌정신과학자 권준수 서울대 의대 교수에 따르면,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중요한 뇌 부위는 전두엽이란다. 판단력·충동억제력·도덕적 능력 등을 관장한다. 그런데 이는 사람마다 크기가 다르고, 명상이나 마음의 훈련이 그 크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충동적이고 선동적인 말을 쏟아내고, 이에 휘둘리는 것이 전두엽의 발달을 지연시켜 이성을 퇴보시킬 수 있다는 거다.

 사회적 이유. 요즘 우리 사회를 ‘괴담의 사회’라 이른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미 FTA가 되면 한국이 미국의 경제적 식민지가 된다는 식의 추측성 괴담을 믿는 2040세대의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기존 정치에 대한 신뢰의 붕괴, 양극화에 따른 소외감이 괴담을 정설로 믿고 싶은 심리상태의 원인이라는 건 안다. 한데 그 유포처가 이 시대 ‘소통’의 도구로 칭송 받는 신기술, 디지털 미디어라는 점에서 비판적 수용보다는 부화뇌동하려는 심리가 한몫 더한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괴담이 신기술과 결합하며 비판적 수용 기능을 약화시킨 것은 아닌지 말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건 중세 마녀사냥의 시대처럼 괴담과 권력욕에 빠져 인간을 사냥했던 불행이 새로운 디지털 버전으로 부활하지 않도록 판단력과 이성을 깨워놓는 일일 것 같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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