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도 못 연 과천시장 소환투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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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국 과천시장

16일 실시된 여인국(56) 경기도 과천시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투표율 미달로 개표도 못 하고 끝났다. 투표권자 3분의 1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 과반이 찬성하면 시장이 해임되지만 이날 투표율은 고작 17.8%였다. 투표권자 5만5096명 중 9820명만 투표를 한 것이다. 주민소환투표를 촉발시킨 과천시내 보금자리주택 건립 물량이 9600가구에서 4800가구로 축소된 것이 낮은 투표율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27일 주민소환투표 발의로 직무가 정지됐던 여 시장은 곧바로 업무에 복귀했다. 여 시장은 “내가 부족해 생긴 사태다. 과천시민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주민소환제는 단체장의 전횡과 권력남용 부정 무능을 견제하기 위해 2007년 7월 도입됐다. 그동안 지자체장에 대한 주민소환은 모두 세 차례 이뤄졌다. 2007년 광역 화장장 유치에 나선 김황식 당시 하남시장과 2009년 해군기지 유치를 추진한 김태환 당시 제주지사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제주지사의 경우 11%, 하남시장은 31.3%의 투표율을 보여 투표함을 열지 못했다.

 이에 따라 무분별한 주민소환투표 청구가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 주민소환제에 ‘청구 사유’가 명시돼 있지 않은 영향이 크다. 미국·독일 등 선진국은 주민소환투표 청구 사유를 직권남용이나 배임행위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단체장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뭉치면 ‘어떤 이유’로도 소환투표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애초 취지와 달리 정치적으로 악용되거나 세금만 낭비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주민소환투표가 발의된 날부터 단체장의 권한행사가 정지돼 행정 공백이 생긴다. 선거비용 역시 고스란히 주민들이 떠안는다. 개표조차 못한 투표에 하남은 2억7000만원, 제주는 11억6000만원을 썼다. 과천도 3억5200여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가천대 송태수(행정학) 교수는 “주민소환이 무산되면 소환을 추진한 단체에 선거비용을 일부 보전케 하거나 소환 대표자의 피선거권을 일정기간 제한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진 기자

◆주민소환=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해임할 수 있는 제도. 기초단체장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유권자 중 15% 이상(광역단체장은 10%, 지방의원은 20% 이상)의 서명을 받아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청구해야 한다. 유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하고, 유효투표 수의 과반이 찬성하면 해당 단체장은 해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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