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난하이’ 핫라인 벨소리 잦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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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유럽의 재정위기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하고 있었던 지난달 27일.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중국 국가주석은 니콜라 사르코지(Nicola Sarkozy) 프랑스 대통령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양국 최고지도자 간에 개설된 직통전화(핫라인·중국어는 ‘首腦熱線’)였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유럽연합(EU)의 재정위기를 설명하고 중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SOS(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였던 셈이다.

 중국의 굴기(?起·우뚝 일어섬)가 뚜렷해지면서 최고 권부(權府)인 중난하이(中南海)를 찾는 외국의 핫라인 벨 소리가 잦아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이후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중국의 도움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중국 주간신문인 ‘국제선구도보’ 최신호에 따르면 2008년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후 주석을 찾는 핫라인이 울리고 있다. 중국 위상이 높아지면서 ‘핫라인 외교’가 더욱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단골손님’은 버락 오바마(Ba rack Obama)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2008년 11월 당선되자마자 후진타오 주석에게 전화를 건 이래 주요 사안이 터질 때마다 매번 중난하이를 연결했다. 이란 핵문제와 기후협약, 아프가니스탄 사태 등 주제도 다양했다. 지난해 연평도가 포격당했을 당시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핫라인을 통해 중국의 입장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퍼파워인 미국조차도 중국의 도움 없이는 세계 문제를 처리할 수 없게 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중국도 적극적으로 핫라인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인도 및 일본과 자주 연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와는 국경문제 해결을 논의한다. 지난해 6월 정식 개통된 일본과의 총리급 핫라인은 동중국해 해역에서의 마찰 방지가 주목적이다. 진찬룽(金燦榮) 중국 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 서방국가들은 국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오지만, 중국 지도자들은 아직은 국내 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있어 먼저 수화기를 드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해석했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최고지도자들의 집단 거주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정부)청사가 입주해 있다. 베이징의 황궁인 자금성(紫禁城)서쪽에 있는 중하이(中海)와 난하이(南海)를 일컫는다. 핫라인은 근정전(勤政殿)의 주석 사무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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