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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타운 쩐의 전쟁, 은밀한 사채의 세계 잠입취재

미주중앙

입력

일반 사무실처럼 꾸며, 30여개 한인업체 성업
금융권 돈줄 막히자 대출 상담전화 폭주

사채에 손을 내미는 한인들이 늘고 있다. 지난 8일 레저 스포츠 용품 인터넷 판매 사이트를 운영중인 김현수(43.가명.뒷모습)씨가 사채업자를 만나기 전에 본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상진 기자

4일 오후 3시 LA한인타운 내 한 카페. 레저 스포츠 용품 인터넷 판매 사이트를 운영중인 김현수(43.가명)씨가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였다.

당장 급하게 한국에 물건을 보내야 하는데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일단 필요한 돈은 현금 1만 달러.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던 김씨가 고민 끝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저기…급한데 일주일 안에 1만 불만 빌릴 수 있나요?".

애써 침착하게 물으려고 했지만 김씨의 목소리는 꽤 다급하게 느껴졌다.

전화로 간단한 개인 정보 등을 알려준 김씨는 사무실 주소를 받아 사채업자를 곧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김씨는 "미국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비즈니스가 힘들어졌는데 최근 급전이 필요해 사채를 몇 번 끌어 쓴 적이 있다"며 "사채를 쓰는 것에 대해서는 가족들도 모른다"고 말했다.

1시간 후 김씨를 따라 LA다운타운 빌딩 내 한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 입구는 '현금 대출' '급전' 등과 같은 문구는 전혀 붙어있지 않았다.

조심스레 문을 두들겼다.

대여섯 명 가량이 일을 하고 있는 사무실 내부는 여느 일반 회사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곧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을 한 직원이 방으로 안내했다.

"얼마가 필요하신대요? 언제까지 돈이 필요하십니까?"

김씨가 상황을 설명한 뒤 "요즘 이자율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사채업자 설명에 따르면 1만 달러의 급전이 필요할 경우 월 5%의 이자가 붙는다. 대신 3개월 선이자를 먼저 지급해야 대출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김씨가 급하게 1만 달러의 돈을 빌릴 경우 월 500달러의 이자가 붙는 셈이다. 그리고 대출을 위해서는 1500달러의 선이자를 내야 하는 것이다.

이자는 선이자를 내고 3개월이 지난 뒤 부터 정해진 날 칼같이 갚아야 한다.

사채업자 이모씨는 "최근 10명 중 3~4명꼴로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우리도 상황이 안좋다"며 "게다가 비즈니스나 집 페이오프가 끝난 자동차 등의 확실한 담보물이 없으면 우리도 돈을 빼주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가 설명을 듣고나서 "이자율을 조금 낮출 수 없느냐"고 물었다.

사채업자 이모씨는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면서 이자율 낮추려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은행에 가서 융자를 받는 게 나을 것"이라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면 일단 이 방법 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여유를 부렸다.

빌리는 사람은 … "대부분 1만달러 미만" "가족도 알리지 않아"
빌려준 사람은 … "10명 중 3명 못같아" "집·차·담보 있어야"

사채는 정식 계약서 보다는 약식 계약서가 통용된다. 이자는 현금으로만 거래되고 채무자의 상황에 맞게 상환 방법이나 이자를 갚는 방식은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

상담이 마무리될 무렵 사채업자인 이씨에게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30분가량 이뤄진 대화 도중에도 사무실에는 '사채'를 찾는 문의전화 벨 소리가 5~6번가량 이어졌다.

이씨에 따르면 최근 사채를 찾는 한인들은 30~40대 남성들이 많다. 대부분은 자영업자들이다. 경기가 힘들어지자 사채로 급전을 끌어다 쓰고 있는 것.

현재 LA지역의 경우 20~30여 개의 한인 사채업체들이 운영되고 있다.

이씨는 "이자를 좀 세게 받을 수밖에 없다. 불법이라면 불법이겠지만 요즘 우리도 (돈을) 떼이는 경우가 많아서 예전처럼 큰돈을 융자 해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1만 달러 이상의 융자를 받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대부분 급전일 경우 1000달러~1만 달러 정도를 빌려가는 수준이다.

하지만 소규모 융자라 해도 사채업을 하는 한인 브로커들은 계속 늘고 있다.

한인 사채업자들의 경우 브로커가 많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미국 내 중동계나 알메니안계의 자본가 등을 등에 업고 사채업을 운영한다. 한인 브로커들의 경우 고객을 알선해주고 중간에서 이자 등을 통해 이익을 챙기는 형식이다.

이씨는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무조건 돈 빌리는데만 정신이 없는데 사채를 쓸 때는 이자가 어떻게 부과되는지 확실히 알고 계산을 해야 한다"며 "각종 매체에서 사채업자를 협박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질 나쁜 사람들로 묘사하는데 사실 그런 것은 흔치 않은 케이스"라고 말했다.

채무자가 감당할 수 없는 무리한 융자를 막기 위해 자동차나 부동산 등 담보 등을 확실하게 저당잡고 융자를 내준다.

이씨는 "해결사나 조폭 등으로 협박하는 것은 과장된 이야기고 서류로 다 서명을 하기 때문에 정식 절차에 의해 압류가 들어간다"며 "우리도 무리한 융자는 절대 해주지 않으며 상담을 거친 뒤 채무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가능한 선에서만 융자를 해준다"고 전했다. 1만 달러를 빌리게 될 김씨는 렉서스 자동차를 담보로 하겠다는 약식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사무실을 걸어 나오던 김씨가 담배를 꺼내 물며 한마디를 건넸다.

"한숨밖에 안 나옵니다. 빌리는 순간 덫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장열 기자

상법 전문가 조언
사채쓰다 신변위협 받으면 "경찰 신고하세요"

일반 소비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이자율 상한은 연 10%다.

캘리포니아 주법에 따라 10%가 넘는 이자율이 적용됐을 때에는 고리의 이자가 되므로 불법이다. 단 예외조항이 있다.

연 10% 이상의 이자가 적용될 수 있는 경우는 ▶정식 라이선스를 가진 부동산 중개인이 알선한 융자나 부동산을 담보로 하는 융자일 경우 ▶가주 금융 법에 의해 저축은행 또는 신용조합이 해주는 융자 ▶보험회사의 융자일 경우 ▶부동산이나 일반 상품을 구입할 때 하는 융자의 경우 ▶신용카드 회사가 적용하는 이자율일 경우 ▶주 정부나 연방정부가 하는 융자 등이다.

한미법률사무소 임종범 변호사는 "만약 사채업자가 채무자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위협을 가하는 경우 중범죄가 적용된다"며 "일반 경찰도 신고가 가능한데 조직범죄일 경우 FBI도 확실한 제보라면 신변보호를 해주기 때문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면 법의 보호를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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