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1%의 위장방문,시위커플…Occupy Wall 진기명기?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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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들이 한명도 남지않도록….”

2달째 계속되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대의 모토는 "우리는 99%(We are 99%)"이다. 이들은 상위 1%의 탐욕이 지금의 경제위기를 몰고 왔다고 주장한다. 월가 금융인들, 백악관 정치인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들 말이다. 또다른 모토 `NBLB(No Billionaire Left Behind: 억만장자여 안녕)`는 미국 부시가 도입한 학력향상대책인 NCLB(No Child Left Behind, 낙오방지법)을 풍자한 구호다. 그런 와중에 성난 군중의 굴에 직접 들어선 1%의 부자가 미국 언론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1% 부자의 시위대 위장방문=미국 포브스지는 지난 주 400명의 1% 부자들에게 시위대에 같이 가보자고 제안했다. 오직 1명만 이에 응했다. 바로 부동산 부자 제프 그린이다. 부동산 재벌인 그는 재산이 미국 상위 0.0004%에 꼽힌다.

그린도 한때는 99%였다. (포브스가 조사한 400명 중의 부자들 중 68%가 그랬다). 그는 팜 비치의 브레이커스 호텔에서 버스보이로 일하기도 했고 히브리계 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강사를 하기도 했다. 서커스 티켓을 팔러 전국을 돌아다니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지난해 플로리다 상원의원의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해 2400만 달러(2억여원)를 쓰기도 했다. 비록 패배했지만 그는 불평등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하지만 시위대에 다녀온 그린은 "시위가 쇼 같았다"고 폄하했다. 그리고 "캠핑장에서 마주친 것은 계급투쟁 군단이 아니라 50명씩 떼를 지어 있는 관광객"이라며 “시위자·기자·음악가가 각각 10%씩이며 나머지 70%는 관광객인 길거리 축제와 다름없었다”고 덧붙였다.

럭비 셔츠를 입은 그의 위장은 성공했다. 그러나 의미있는 소득을 거두진 못했다. 그는 "나는 적어도 그곳에는 정보로 무장된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정보도 주고 받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돼야 하는지를 얘기하는 `스마트한` 부스가 한 두개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걸 보지 못햇다. 당신이 시장주의자이건 사회주의자이건 간에 보다 스마트해질 필요가 있다"고 시위대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그가 위장신분이 아니라 0.0004%임을 밝히고 당당하게 먼저 질문을 했다면 설득력 있는 논쟁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커플` 시위대 탄생도=그런가하면 필라델피아 시위대에서는 첫 커플이 나와 결혼에 골인했다. 지난달 필라델피아 시청 앞 `정보센터`에서 만난 알리시아 나우스(24)와 아담힐(27)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지난 주말인 6일 시청 앞에서 사랑의 징표인 반지를 나눴다. "어떤 일이 조직적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날 때는 그건 어떤 하늘의 계시 아닌가요"고 나우스는 말했다.

그들의 결혼은 시위대에겐 하나의 이벤트가 됐다. 결혼식은 `미국을 치유하라(Healing America)`라는 콘서트와 함께 열렸다. 예술과 음악 단체들을 불러모으는 역할을 했다. 정부기관이 예산 절감을 외칠 때마다 표적이 된 예술 프로그램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랩에게 레게까지 다양한 풍경이 펼쳐졌다. 시위대 음식위원회가 케잌을 선사했고, 시위대 친구들은 25년 전에 쓰던 크리스탈 식기를 기증하기도 했다. 시위대에겐 다가오는 겨울 날씨가 고민이다. 필라델피아에서 한달째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트레비스 루이스는 "추위가 걱정이지만 그것이 시위대의 열정을 사그라들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주코티 공원의 마이클 스캇코는 "나이든 히피로서, 사람들이 분기탱천해 일어서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내 나이 또래는 너무 순응적이지만 젊은이들은 소란을 일으키고 분기한다. 순진해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월가 점령 시위는 미국 뉴욕 맨하튼 주코티공원에서 시작해 8주만에 전세계 900여개 도시로 확산됐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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