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거짓과 괴담에 춤추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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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금 우리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하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 지난 주말부터 사이버 공간은 “BBK 핵심 인물인 에리카 김과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미군의 오산비행장으로 입국했다”는 글로 도배됐다. 폭발성이 강한 사안인 만큼 댓글과 리트윗이 넘쳐났다. “범죄인을 데리고 온 게 아니라 모셔왔군” “묘한 시기에 내재된 미국의 전략이다” “MB가 미국에 코가 꿰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목을 건다”…. 그중 “냄새가 풀풀 난다. 아! 정말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고프다”는 트위터의 글이 압권이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오산비행장 입국설은 지난달 21일자 모 주간지에 실린 내용이다. 해당 기자는 “믿을 만한 소식통에서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나온 수많은 언론기사들을 검색하면 진실이 보인다. 한 전 청장은 2월 24일 오전 5시15분 대한항공 KE062편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검찰 수사관과 취재진이 현장을 지켜봤다. 검찰은 에리카 김도 “인천공항으로 왔다”고 확인한다. 훨씬 핵심인물인 김경준씨도 수갑을 찬 채 인천공항으로 왔고, 계약서 원본을 가진 그 어머니도 인천공항으로 들어왔다. 그때마다 공항에서 검찰청사까지 취재진들과 쫓고 쫓기는 장면이 반복됐다.

 한 주간지 기자가 우기는 ‘믿을 만한 소식통’에 넘어가 “드디어 진실이 드러났군”이라 난리법석을 떨어야 하는가. 두 눈 부릅뜨고 현장을 지킨 수많은 기자들은 아바타를 본 것인가. KE062편은 하릴없이 인천공항과 오산비행장을 왔다 갔다 한 것인가. 어느 쪽이 상식이고 어느 쪽이 비(非)상식인가. 과연 어느 쪽이 “아! 정말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탄식해야 하는지 반문하고 싶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온갖 괴담(怪談)이 판친 2008년 광우병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한·미 FTA에 보건의료서비스는 제외됐는데도, 촛불집회의 여고생들은 “선생님이 그러는데 손가락 두 개 잘리면 하나밖에 못 붙인다 하더라” “맹장 수술비 없어 다 죽으란 말이냐”며 절규한다. 인터넷에는 민주노동당의 ‘한·미 FTA 12가지 완벽 정리’의 무한 퍼나르기가 한창이다. 이에 대해 국제통상법 전문가들은 “소 원료로 만든 화장품만 써도 광우병에 걸린다는 것과 똑같은 논리”라며 “전혀 가능성 없는 이야기를 가정에 가정을 거듭해서 만든 괴담”이라 입을 모은다.

 모름지기 정치 지도자는 대중과 항상 정중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좇아야 한다. 그럼에도 촛불집회에 파묻혀 “한·미 FTA로 모든 걸 미국 자본에 다 넘겨준다”며 “이번 투쟁은 매국이냐 애국이냐의 싸움”이라고 핏대를 세우는 야당 지도자들에게 절망감을 느낀다. “여기 모인 촛불, 총선·대선까지 가자”는 선동(煽動)에는 전율(戰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거짓과 선동으로 뒤집을 수 있다고, 우리 사회를 그렇게 얕잡아 보는가. 광우병 사태 이후 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있는가. 거짓말로 어린 학생들의 등을 떠밀어 무얼 노리는가. 우리는 사회 구성원들의 절대다수가 상식적으로 판단해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