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린이들은 어떤 동화를 읽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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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요즘 너희들끼리 주고 받는 유머 가운데 '통일을 하는 방법'이라는 게 있더구나. 드라마〈허준〉을 좋아하는 아이들끼리 만든 유머 같은데 내게는 참 불만이다. 그게 이런 거지?

통일을 이루기 위한 방법
1) 김정일 님께〈허준〉5회까지 보여준다.
2) 통일을 하면 드라마〈허준〉을 끝까지 보여준다고 한다.

단 두 문장 밖에 안 되는 유머인데, 너희들은 그걸 재미있어 할 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식의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아이야, 세상의 모든 일을 어느 한 쪽의 문제로만 결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야. 하나 둘 잘 따져 보면, 싸움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양쪽에 모두 문제가 있는 법이야. 어느 한 쪽에만 일방적인 책임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 특히 '통일'이라는 문제처럼 복잡한 문제는 어느 한 쪽, 그것도 어느 한 사람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란다.

보다 성숙한 생각으로 문제를 올바르게 보려면 항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한단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항상 의심하고 다시 생각해 보는 자세가 우리 사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야. 그 동안 배웠던 것, 주변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것만을 바탕으로 사건이나 상황을 단정지어 버리는 태도는 안 좋은 태도야.

엊그제 텔레비전에서는 '빨갱이'라는 이유 하나로 평생을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지? 너도 보지 않았니? 그 이야기에서처럼 통일이라는 문제는 간단치 않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주 복잡한 문제에 얽혀 있는 문제란다.

그래도 갈라진 우리 민족이 어서 하나 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만들어낸 유머라는 뜻에서 보자면 매우 기특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남쪽의 대통령 김대중 님이 평양에 가서 북한의 제일 높은 사람인 김정일 님을 만나고 돌아올 정도이니, 통일은 그리 멀기만 한 이야기는 아닐 거야.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어린이는 어떤 책을 읽으며 자라고 있는 지를 알아보는 일은 필요한 일이 될 거야.

그래서 오늘은 북한 어린이들이 읽는 북한 동화 몇 권을 소개할게. 너도 알고 있는 책인지 모르겠다만 요즘같은 때에 다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1992년부터 산하 출판사에서 낸 〈북한의 어린이〉 시리즈(모두 다섯 권)를 이야기하는 거야.

이 책들에 담긴 이야기들도 재미있지만, 너희들이 좀더 각별히 봐 주었으면 하는 것은 북한 어린이 동화에 살아 있는 순수한 우리 말들이야.

이 책들은 북한의 맞춤법을 그대로 옮겼으니, 가만히 살펴 보면 북한의 말과 글이 우리와 얼마나 달라졌는 지, 혹은 얼마나 같은 지를 알 수 있겠구나. 우리와 말조차 많이 달라졌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북한 사람들은 순수한 우리 말을 고스란히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순 우리말로 새로 지어낸 말들 중에는 참 재미있는 말들이 많이 있어.

'급해진'을 '빠빠맞은'으로, '도시락'을 '곽밥'으로, '참견하지 말라고'를 '비치지 말라고'로 쓰는 부분에서는 우리 말의 원래 모습을 되찾은 듯한 느낌까지 드는 걸. 또 우리가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옛 우리 말도 많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을 거야. 배워야 할 부분이지.

이 책들 가운데 네 권은 저학년을 위한 책이고, 고학년을 위한 동화는 〈김첨지의 메주콩〉 한권이야.

이 책에 참 재미있는 형식의 이야기가 있더구나. '짧은 이야기'라고 돼 있는 스물 일곱 편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인데, 이걸 북한에서는 '이야기 시'라고 이야기하는 모양이야. 시처럼 쓰였는데, 시라고 보기에는 좀 길고, 또 모두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

사과 한 알을 얻은 두 마리의 꾀쟁이 생쥐가 언덕 길을 올라가면서 서로 힘을 덜 들이기 위해 꾀를 부리고 싸움질을 하다가 결국은 겨우 얻은 사과 한 알을 잃어버리는 '꾀쟁이 두 생쥐' 이야기. 상어나 고래가 사는 세상, 즉 잘 알지도 못하는 세상에 대한 동경의 마음만 갖고 무작정 길을 떠났다가 내장을 잃어버리는 해삼 이야기.

까치와 어치, 꾀꼴새와 고지새(밀화부리)의 이야기에 주제 넘게 참견하다가 회초리를 맞게 되는 참새 이야기. 짧은 이야기들은 어디선가 많이 보던 이야기같은 느낌이 드는구나.

그래 맞아, 이솝 이야기야. 이 책의 '짧은 이야기'들은 우리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친근한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너희들의 생활에 가르쳐 줄 수 있는 교훈들을 전해주고 있지.

바로 이솝 이야기의 원래 뜻과 같은 거야. 이솝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는 아니어도 본래 뜻이 같다 보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 게야.

그밖에도 바다가 되고 싶어, 동무들과 함께 생활하기보다는 하루빨리 먼 바다로 나가고 싶어하던 하나의 물방울이 마침내는 다른 물방울들과 합쳐야만 큰 바다가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우치는 이야기 등 대부분의 이야기는 너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교훈적인 이야기야.

그런 까닭으로 북한의 동화들이 재미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물론 개구장이 이야기처럼 중구난방, 천방지축인 재미는 없어. 하지만 교훈적인 이야기면서도 최대한 재미를 만들어 넣고자 애쓴 동화들이기 때문에 그리 지루하지는 않을 거야.

그래, 좋다. 백보를 양보해서 이 책들이 모두 재미없다고 하자. 그래도 이 동화들은 너희들이 북한의 어린이들과 얼마나 다른지, 앞으로 통일이 되면 그 달라진 친구들과 어떻게 사이좋게 지내야 할 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한번 읽어두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해.

지난 번에 북한 아이들의 공연을 보면서, 우리와 참 다르다는 이야기를 같이 했잖니? 그래, 우리가 정말 통일을 원한다면 드라마〈허준〉을 보여주고 김정일 님에게 항복을 받아내는 식이 아니라, 우리 친구들의 생각과 느낌부터 하나 하나 같이 하는 게 필요할 거야.

아이야. 통일이 되면 참 좋겠지? 그러면 잃어버린 할아버지의 고향도 가볼 수 있을텐데….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이 글에서 이야기한 책들
* 〈북한의 어린이〉 (이재복 엮음, 산하출판사, 1992년)
* 〈김첨지의 메주콩〉 (이재복 엮음, 산하출판사, 1992년)
* 이솝 이야기 (신현철 최인자 엮음, 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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