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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 ‘박원순 전기’를 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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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종윤
내셔널 데스크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모건 스탠리 이사였던 앨리스 슈뢰더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이야기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다를 땐 ‘아첨이 덜한’ 쪽으로 써달라.” 그의 전기 『스노볼』에는 버핏의 지혜는 물론이고 어리석음도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의 삶이 뿜어내는 향기와 악취는 결국 공감의 방향제로 혼합돼 독자의 마음을 적셨다.

 스티브 잡스도 그랬다. 그의 전기를 쓴 타임 편집장 출신 월터 아이작슨에게 고백했다. “자랑스럽지 못한 일, 수치스러운 일도 많았지요. 스물세 살 때 여자친구를 임신시키고 그걸 처리한 방식이라든지….” 잡스의 아내 로런은 더했다. “잡스의 인생과 성격에는 극도로 지저분한 부분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눈가림해서는 안 돼요.” 전기 『스티브 잡스』가 가슴을 울리는 건 천재와 악마의 교집합이 날것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두 거장의 이야기를 끄집어낸 건 미래에 나올 박원순 서울시장의 ‘전기’를 생각해서다. 박 시장이 동의하든 안 하든, 이미 그의 전기는 집필되고 있다. 필자는 서울시민들이다. 그가 취임한 지 10일. 새 시장은 시작부터 거침없다. 시민들은 ▶초등학생 전면 무상급식 ▶시립대 반값 등록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같은 시장의 행보를 머릿속에 착착 쌓아두는 중이다.

 박 시장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확실한 색깔을 내는 그의 기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관건은 이런 기세가 선을 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벌써 잡음이 들린다. 내년도 서울시 예산을 짜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 구성한 ‘자문위원회’의 권한이 도마에 올랐다. 이들은 시민단체 활동가와 교수 등 ‘박원순 사람들’이다. 선거로 선출된 권력이 필요한 사람을 쓴다는 데 토를 달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자문위원들은 자문위원으로서의 권한을 무시로 넘어서고 있다. 이들의 말을 거역할 공무원이 있겠는가. 이들의 ‘자문’은 실제로는 ‘명령’이다. 시민세력의 존재 의의는 권력과 시장(市場)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 있다. 이런 시민진영이 권력을 갖고, 시장을 통제하려 든다면 이들이 본능적으로 혐오했던 ‘대립’과 ‘반목’을 더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안철수씨는 선거 막판에 박원순 후보에게 ‘이번 선거는 누가 대립이 아닌 화합을 이끌어낼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말하는지를 묻는 선거’라는 편지를 썼다. 박 시장이 초기부터 내 편에만 힘을 실어주거나, 자신의 힘을 등에 업고 설치는 ‘박원순 사람들’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안철수 편지의 의미는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버핏과 잡스가 추앙받는 건 스스로의 치부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용기 때문이다. 박 시장도 이런 결단이 필요하다. 허물이 드러나면 바로 인정하고, ‘변화’라는 비전을 위해서라면 내 편이라도 내치는 결단 말이다. 그러지 못하면 날카로워진 시민 작가들의 필봉에 ‘박원순 전기’는 초라해질 것이다.

김종윤 내셔널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