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콤플렉스, 제발 버리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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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호 30면

지금까지 한국에 있는 동안 대여섯 명의 지인은 내게 “같이 학원을 하자”고 제안했다. 왜 아니겠는가? 한국에서 꽤 많은 돈을 만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서울 강남 대치동에 영어 유치원을 하는 거라는 사실쯤은 나도 잘 안다. 학원 이름으론 ‘하버드 케임브리지 천재 아카데미’ 정도가 딱이다. 자녀 성적을 위해서라면 월 100만원, 아니 150만원도 선뜻 낼 준비가 된 어머니들을 끌어들이고, 운은 좋지만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을 가르치면 된다. 하지만 난 절대로 하지 않을 작정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영어교육업계가 가장 파괴적이면서 사회를 분열시키는 존재라고 본다. 과도한 지출을 조장하는 영어교육업계는 각 가정이 힘들게 번 돈을 착취하고, 자녀 교육비를 걱정하는 예비 부모들의 출산을 막는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똑똑한 아이들은 경쟁력을 갖추기 더 어렵게 된다. 가장 놀라운 것은 영어교육업계가 시험 점수를 올리는 데만 급급해 실제 영어소통 능력은 없애버린다는 거다. 우리 주변에 토플 성적은 뛰어난데 간단한 회화를 하는 것도 극도로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학원 운영자들 탓만 하는 것도 비합리적이다. 그들의 사업은 합법적인 데다 수요도 아주 많다.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사회의 가차 없는 경쟁 구도, 그리고 영어를 능력 판단의 우선 준거로 삼아 역효과를 초래하는 세태다.

영어는 쓰임새가 많은 언어다. 내가 태어난 조그만 섬나라의 언어가 이렇게 진화됐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렇다고 모든 한국인이 영어에 능통할 필요가 있을까? 20세기의 가장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일군 나라 중 하나인 일본의 경우 모든 일본인이 영어에 특출나게 뛰어난 적은 없었다.

한국인 동료와 거래처·소비자를 상대하는 평범한 한국인 회사원들이 모두 다 영어를 반드시 구사해야 할 필요는 없을 거다. 차라리 영어 전문가들을 더 키워내는 게 맞다. 호주에서 온 e-메일을 읽고 전화로 답을 줄 수 있는 동료가 한 팀에 한 명쯤 있으면 된다. 팀원 전체가 그럴 능력을 갖출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영어 점수는 여전히 입사와 승진, 또 대학 입학의 주요 기준이다. 기업이나 대학들이 토플 점수를 활용하는 걸 보면, 다른 조건들이 엇비슷한 두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영어인가? 토플 점수는 실제 영어 구사력과는 거리가 있다. 돈이 훨씬 덜 드는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면 어떨까? 회계 규칙을 암기하든가, 1930년과 2010년 사이 월드컵에서 승리한 선수 명단을 외우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그럴 정도로 한국식 영어교육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들이 암기를 강요당하는 단어의 99%는 영어 원어민들은 절대 사용하지 않을 단어들이다. 이런 것들을 가르치는 학원들은 엄청난 돈을 요구하며 부모들에게 재정적 압박을 안기고, 이는 저출산과 중산층 약화 현상으로 이어진다. 내가 ‘신(新)양반’ 계층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썼는데, 이들의 지위는 소위 ‘엘리트’ 교육에 대한 접근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로 유지된다.

얼마 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라는 단체가 영어 사교육에 지출하지 말자면서 만들어낸 책자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 취지에 완전히 동의하지만, 이런 주장과 캠페인 방식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 구성원이 모두 함께 태도를 바꾸기로 결정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오피스텔에 사는 가난한 기자로서, 또 한국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외국인으로서, 그리고 이곳에 오랫동안 살고 싶은 사람으로서 난 항상 좋은 사업 제안을 들고 오는 파트너들을 환영한다. 어떤 아이디어든 좋다. 단, 영어 학원과 같이 속셈 뻔한 건 말고.



대니얼 튜더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경제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대에서 MBA를 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처음 방한했으며 지난해 6월부터 서울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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