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민주당은 영원히 야당만 할 건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정경민
뉴욕 특파원

요즘 미국 정치권을 보노라면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실업률이 9.1%나 되는 혹한(酷寒) 속에서도 이전투구(泥田鬪狗)에 여념이 없다. 대통령이 일자리 법안을 내놓자 하원을 장악한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 부결시켜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뿔난 대통령은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며 연일 각종 민생조치를 발표하는 길거리 정치로 맞서고 있다. 대화는 실종된 지 오래다. 멀리서 서로 ‘장사정포’만 쏴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으르렁대던 여야가 거짓말처럼 머리를 맞댈 때가 있다. 국익이 걸린 외교·통상 현안에서다. 지난달 12일 미국 의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통과시킬 때가 딱 그랬다. 백악관이 비준안을 의회에 제출하자 여야는 회기일수로 딱 6일 만에 처리하는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오히려 여당인 민주당 내에 반대 목소리가 크자 야당의원들이 대거 백악관 편을 들어 고비를 넘겼다.

 미국 야당의원들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이 예뻐서 찬성표를 던졌을까. 정략적으로만 본다면 야당 입장에선 나중에 어떻게 되든지 간에 한·미 FTA를 저지하는 게 훨씬 유리했을지 모른다. ‘일자리는커녕 한국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한 무능력자’란 낙인을 오바마 이마에 꽉 눌러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야당의원들은 오바마가 한·미 FTA를 자신의 치적으로 자랑하는데 박수까지 쳐줬다. 도대체 미국 야당의원은 배알도 없는 걸까.

 어쩌면 그런 여유는 공화당의 오랜 집권 경험에서 나온 게 아닐까. 더욱이 한·미 FTA는 공화당이 여당이었을 때 타결한 협정이었다. 만년 야당으로 만족한다면 정부 입장 같은 건 고려할 필요가 없다. 외국과의 관계도 내 알 바 아니다. 그러나 야당도 언제든 여당이 돼 정부를 운영해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막가파식’ 반대가 결국 제 얼굴에 침 뱉기요, 제 발등 찍기가 된다는 건 자명한 이치다.

 한데 10년이나 여당 노릇을 해본 한국의 제1야당은 딴판이다. ‘한·미 FTA는 을사늑약(乙巳勒約)이고, 이를 추진해온 정부 각료는 이완용’이라며 마녀사냥에 앞장서고 있다. 그럼 4년 전 한·미 FTA를 타결한 장본인인 노무현 대통령은 뭐가 되는 걸까. 대표적 독소조항이라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도 당시 협정문에 이미 다 들어 있었다. 정치를 할수록 뇌는 조류에 가까워지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장관에 여당 대표까지 다 해먹은 야당인사는 “그땐 몰라서 그랬다”고 둘러댔다. 사람인 이상 실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을사늑약까지 들먹일 정도로 무시무시한 독소조항조차 알아보지 못한 위인이 정치하겠다고 덤비는 건 꼴불견이다. 정말 낯이 뜨겁다면 자신의 무능부터 사죄하고 정계를 떠나는 게 도리 아닐까. 혹여 나중에 여당 되면 “그땐 철이 없었다”고 또 변명할 텐가.

정경민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