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숨은 화제작]여기보다 어딘가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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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럭 클럽〉 〈스모크〉로 유명한 웨인 왕 감독의 작품. 가족문제, 특히 엄마와 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녀 관계를 다룬 영화들이 주로 오락적 관점에서 그린 멜로 드라마인데 비해, 이 영화는 사실적이면서도 진지한 접근이 돋보인다. 흥행을 의식해 줄거리를 적당히 버무리지도 않고, 등장 인물의 심리 묘사도 매우 구체적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엄마 아델과 심하게 다툰 아빠는 집을 나간다. 이후 앤은 엄마와 둘이 살아간다. 나이보다 어른스럽고 현실적인 열다섯의 앤과 달리 엄마 아델은 언제나 불안정하다.

옷차림이 요란하고 즉흥적인 기분에 좌우된다. 싫증도 쉽게 느낀다. 언제나 새로움을 찾아 다니지만,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는 엄마가 앤은 못마땅하다.

그래서 앤은 독립을 꿈꾼다. 하지만 엄마를 떠나지 못한다. 휘청거리며 살아가는 엄마가 안스럽기 때문이다.

어느날 아델은 전재산을 털어 벤츠자동차를 산다. 앤을 데리고 캘리포니아로 떠나기 위해서다.

〈데드 맨 워킹〉에서 열연했던 수전 서랜든이 아델역을 맡아 신경질적인 중년 여성을 매끈하게 소화해낸다.

또 〈레옹〉 〈스타워즈-에피소드Ⅰ〉에 출연했던 나탈리 포트먼이 생각이 깊으면서도 반항적인 10대를 생동감 있게 연기한다. 특히 엄마의 성화에 밀려 나간 영화 배우 오디션 현장에서 앤이 엄마 흉내를 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오디션장을 찾아간 엄마가 이를 몰래 지켜본다. 자신의 삶에 보내는 딸의 연민을 확인한 아델은 할말을 잃는다. 캐릭터도 연륜도 다르지만 두 사람의 연기 대결이 볼만하다. 원제 Anywhere but Here. 1999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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