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동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에 칼 빼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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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동

“세금 없는 부(富)의 대물림은 끝까지 추적하라.” 지난 7월 전국 조사국장 회의를 긴급 소집한 이현동 국세청장이 한 말이다. 헛말이 아니었다. 중견기업인과 자산가의 편법 상속·증여를 겨냥한 국세청의 칼끝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국세청은 올해 조세피난처를 활용해 자녀에게 기업이나 재산을 넘긴 기업인 11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해 총 2873억원을 추징했다고 3일 밝혔다. 아울러 혐의가 의심되는 기업인 4명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세청이 중점 조사하는 것은 해외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편법 상속·증여다. 국세청이 이날 공개한 사례에 따르면 전자부품 중견업체인 A사의 대표 김모씨는 A사를 비롯해 국내외에 여러 공장을 운영하면서 상속을 위해 버진아일랜드에 X펀드를 만들었다. 이어 A사 등이 보유한 해외 지주회사의 지분을 X펀드에 싼값에 넘기고, 펀드의 출자자 명의를 아들로 바꿨다. 국세청은 김씨와 A사에 대해 법인세 및 증여세 800억원을 추징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자원개발업체인 B사의 사주 정모씨는 버진아일랜드에 본인 명의의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B사로부터 자원개발 투자비 명목으로 투자금을 끌어들였다. 이 투자는 막대한 이익을 냈다. 하지만 정씨는 원금만 국내 회사로 보내고 수백억원의 투자소득은 해외 예금계좌에 은닉하거나 아내 명의로 미국 내 고급 아파트를 구입하는 데 썼다. 정씨에게는 소득세 및 증여세 등 250억원이 추징됐다.

 국세청은 연간 매출액 1000억∼5000억원대의 전자·기계·의류제조·해운업 등을 운영하면서 창업 1세대에서 2세대로 승계가 진행 중인 중견기업인들과 거액 자산가들이 해외 거래를 통해 편법 상속·증여를 시도했는지 정밀 분석하고 있다. 국세청 임환수 조사국장은 “혐의가 짙은 10명에 대해서도 3일부터 특별 세무조사에 들어갔다”며 “해외 거래를 이용한 탈세는 끝까지 추적해 과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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