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년 쌓은 노하우 아낌없이 나눠 드려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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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호 07면

26일 오후 서울 강일고에서 CEO 지식나눔 회원인 김수근(오른쪽) 전 SADI 원장이 ‘스마트 시대의 라이프 디자인’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여러분, 인생을 디자인하세요. 라이프 플랜 말고 디자인을 해야 합니다. 둘 사이엔 차이가 있어요. 플랜이 성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디자인은 행복을 위한 것이죠. 여러분에겐 행복한 삶을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해요.”

받은 것 돌려주자는 ‘CEO 지식나눔’ 회원들

지난 26일 오후 서울 강일동 강일고등학교. 36명의 학생 앞에서 김수근 전 SADI(삼성디자인학교) 원장이 강연을 펼쳤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직접 준비해 온 그의 강연 주제는 ‘스마트 시대의 라이프 디자인’. 그는 학생들과의 눈높이를 위해 인기 드라마를 예로 들기도 했다.

이날의 강연은 ‘CEO 지식나눔 초청 강연’. 한국과학창의재단과 사단법인 CEO 지식나눔 주관으로 열렸다. 김 전 원장은 CEO 지식나눔의 회원 자격으로 이날 나섰다. 삼성·LG·현대 등 대기업과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구성된 CEO 지식나눔은 지난해 10월 출범했다. 출발은 삼성 출신 CEO 10여 명이 매달 모여 서로의 근황을 나누던 친목 모임이었다. 그러다 “CEO가 되기까지 사회에서 받은 것이 많으니 이젠 사회에 나누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회원들이 500만원씩 출연해 재단을 설립하고, 지식경제부 인가까지 받았다. 회원도 다른 대기업과 금융권·공직 출신으로 확대해 38명으로 늘어났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조영철 전 동부 사장은 “일선에서 물러난 후 여행 다니고, 건강 챙기는 것도 좋지만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다”며 “개인 한 사람으론 사그라지고 말 경험과 경륜이지만 모이면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조직 출신의 다양한 전문 영역을 가진 이들은 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30~40년에 이르는 각자의 경험과 경륜을 젊은이들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대학생 멘토링 사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장학재단(이사장 이경숙)의 추천을 받은 대학생들의 멘토가 된 것이다. CEO 각자가 대학생 10명씩 맡았다. 평균 한 달에 한 번씩 직접 만나서 진로 조언을 하고 사소한 생활 고민까지 나눈다. 조 대표는 “학생들이 스펙 쌓기에 몰두하느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을 할 여유도 없고, 조언을 구할 대상도 마땅치 않다”며 “대화하고 수시로 e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인생 선배로서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CEO들의 멘토링은 단순히 조언에 그치지 않는다. 테마를 정해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조 대표의 경우 CJ홈쇼핑 사장을 지낸 경력을 십분 활용했다. 유통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을 위해 e-비즈니스 강의를 하고 홈쇼핑 기업 견학 기회도 마련했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의 경우 취업·비전·리더십 등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주제를 정해 사내의 전문가가 직접 강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김 회장은 “학생들에게 보다 깊이 있는 얘기를 들려주기 위해 고안한 멘토링”이라며 “나 혼자가 아닌 직원들까지도 지식나눔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서 사회의 공생모델을 확립하는 기회도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건 아니다. 막내 아들·딸 뻘인 학생들과의 소통을 통해 CEO들이 젊은 세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선 강일고 강의는 과학창의재단과 손잡은 프로그램이었다. 강일고처럼 과학중점학교 지정을 받은 곳에서 이과 지원자를 대상으로 이공계의 중요성을 알리는 취지다. 올해는 노기호 전 LG화학 사장, 민경조 전 코오롱그룹 부회장, 최길선 전 현대중공업 사장 등이 서울·경기도 지역 20개 고교에서 강의 중이고 내년엔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입시공부에 쫓기는 학생들에게 CEO들의 비전 제시가 와닿을까 싶지만, 강일고 노기호 교사는 “학생들이 수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사회에 대한 간접경험에 흥미를 느껴 강의시간을 넘겨가며 질문을 던진다”고 얘기했다.

대학에서는 아예 정규 과목을 맡기도 했다. 한양대와는 양해각서(MOU)를 맺고 경영학부 학생을 대상으로 2학점짜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 1학기엔 이화여대에서도 수업이 예정돼 있다. 조 대표는 “우리의 현장 경험을 통해 기업과 대학의 간격을 좁힐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연으로 받은 강연료는 다시 사회로 환원된다. 대학생을 위한 장학기금을 마련하고, 사회적 기업에 출자해 고용 촉진에도 기여할 계획이다. 활동 영역과 지원 대상도 확장 중이다. 이미 벤처기업인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 중소기업을 위한 컨설팅을 진행 중인데 앞으로는 예비 창업인에게도 도움을 줄 생각이다. 창업자들의 실패 위험을 줄이고,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센터를 세우며 차세대 리더 아카데미 설립 방안도 구상 중이다.

CEO 지식나눔은 출신 기업별로 5명의 공동대표를 뒀다. 인맥을 통해 후배 CEO들을 회원으로 영입하려는 선배 CEO들의 ‘묘수’다. 조 대표는 “더 많은 CEO들을 참여시켜 궁극적으로 차세대 CEO를 육성하고자 한다”며 “우리의 활동이 은퇴자들에게 좋은 롤 모델이 돼서 나눔문화를 확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CEO 지식나눔 회원 명단 (가나다 순)
강정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금융전문대학원 원장·김기용 카길애그리퓨리나 회장·김병일 김앤장 법률사무소 상임고문·김수근 전 SADI 원장·김종욱 전 우리투자증권 회장·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노기호 전 LG화학 사장·노부호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문형남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민경조 전 코오롱그룹 부회장·박문화 전 LG전자 사장·박종식 전 삼성지구환경연구소 소장·박주철 SK D&D 대표이사 부회장·박찬원 성균관대 석좌초빙교수·변찬의 ㈜수호원 사장·서병문 단국대 교수·서요원 ㈜미성산업개발 사장·신원기 전 르노삼성자동차 부사장·신재철 전 LG CNS 대표이사 사장·신필열 전 삼성 라이온즈 사장·우의제 ㈜하이셈 회장·윤봉태 전 중국 청도리동화공 사장·이강호 한국그런포스펌프 사장·이명우 한양대 경영대학 특임교수·이방주 JR자산관리 회장·이상현 전 삼성전자 사장·이종수 전 효성 건설부문 부회장·이태용 아주그룹 부회장·임승진 전 삼성화재 부사장·임영학 전 CJ홈쇼핑 대표·정영근 LGI Corporation 회장·정충시 ㈜세진에이엠 회장·제환석 전 코오롱 FnC사장·조영철 전 동부 사장·최길선 전 현대중공업 사장·최동수 전 조흥은행장·최홍성 조선호텔 대표이사·홍순용 전 효성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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