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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뛰어들고 바다 풍덩 … 멧돼지 왜 이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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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달 26일 아침 전남 광양시 진월면 이정마을. 밤밭에서 밤을 줍던 김모(76)씨 부부는 어슬렁거리는 멧돼지 한 마리 를 발견하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가까이 다가가자 인기척에 놀란 멧돼지가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경찰은 손에 쥔 권총을 연거푸 발사했고, 실탄 두 발을 맞은 멧돼지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지난달 29일 아침에는 울산시 북구 진장동의 한 공장에 100㎏이나 나가는 멧돼지가 사흘 연속 주변에 나타나며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경찰이 출동해 실탄까지 발사했으나 포획에는 실패했다. 지난 17일에는 울산 현대미포조선 부두에서 헤엄치던 멧돼지 한 마리가 해경에 의해 포획된 데 이어 18일에도 정자 앞바다에서 헤엄치는 멧돼지가 목격됐다.

 이 정도는 사람이 다치지 않아 그래도 나은 편에 속한다. 올 8월 7일 충북 제천에서는 60㎏짜리 멧돼지가 김모(67)씨의 왼쪽 정강이를 물고 달아났다. 이달 24일에는 서울 올림픽대로에서 150㎏이나 되는 커다란 멧돼지가 승용차와 부딪히면서 운전자가 부상을 당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멧돼지 도심 출현 횟수는 2009년 31건에서 지난해 79건으로 크게 늘었고, 올해도 8월 말까지 65건에 이른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에 치여 죽는 로드킬(Road Kill)도 지난해와 올해 43건이나 발생했다. 멧돼지에 의한 농작물 피해도 적지 않다. 2008년 56억원, 2009년 53억원, 2010년 64억원 등으로 전체 야생 조수에 의한 농작물 피해액의 절반을 차지한다.

 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척추동물연구과장은 “늦가을이나 초겨울 멧돼지들의 도심 출현이 늘어나는 것은 교미 시기를 맞아 세력에 밀려 쫓겨난 어린 수컷이 많아졌기 때문”이라 고 말했다.

 이처럼 전국의 마을과 도심, 도로에 멧돼지가 자주 나타나 자 환경부가 26일 ‘멧돼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환경부는 우선 다음 달부터 내년 2월 20일까지 강원·충북 등 9개 도에 개설되는 수렵장을 30개로 늘리기로 했다. 지난해 22곳에 비해 8곳(36%)이 늘어났다. 수렵장 면적도 8315㎢에서 1만2408㎢(전 국토의 12%)로 49% 늘어났다. 수렵 허가를 받은 개인은 멧돼지를 한 사람이 최대 6마리까지 잡을 수 있다. 환경부는 또 각 시·도와 시·군·구별로 관할 경찰서와 소방서 등과 협조해 멧돼지 기동 포획단을 운영할 계획이다.

 환경부는 27일 오전 과천청사에서 서울·인천·경기도 등 3개 시·도 관계자와 경찰청·소방방재청 등 관계 전문가들을 불러 수렵장이 운영되지 않는 수도권 지역의 멧돼지 포획 대책도 마련할 예정이다.

 환경부 김승희 자연자원과장은 “예산·인력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고 총기 사용으로 인해 주민 민원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수렵장 개설 권한을 가진 시장·군수가 이를 기피하는 게 사실”이라며 “내년 7월부터는 시·도지사가 직권으로 인접 시·군을 묶어 광역수렵장을 개설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야생동식물보호법)을 개정했다”고 말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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