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트리 오브 라이프] 성공 바라는 아버지, 그게 고통스러운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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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63회)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트리 오브 라이프’. 가족간 갈등과 화해를 시적 영상으로 풀어 놓았다. 권위적인 아버지를 연기한 브래드 피트(오른쪽)는 제작에도 참여했다.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를 감상하려면 테렌스 맬릭(68) 감독부터 알아야 한다. 그의 별명은 ‘영상철학자’.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MIT 철학교수로 재직 중인 남다른 이력, 영화를 통해 성찰을 이끌어내는 독보적인 연출 스타일 때문이다. 데뷔작은 대공황기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 ‘천국의 나날들’(1973). 프랑스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첫 작품 후 20년 만에 발표한 전쟁영화 ‘신 레드라인’(1998)으로 베를린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거장 반열에 올랐다.

 그의 영화는 다소 낯설다. 하지만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파고드는 시선과 영상미학은 2시간의 관람을 늘 예사롭지 않은 체험으로 만든다. 하나는 확실하다. 투자한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의 보상은 분명 돌아온다는 것. 올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트리 오브 라이프’도 이 노(老)철학자의 무르익은 지혜가 켜켜이 배어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1950년대 미국 텍사스주에 사는 한 가족이 주인공이다. 건축가로 성장한 장남(숀 펜)이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아버지(브래드 피트)는 성공을 향한 열망이 가득하다. 인자한 어머니(제시카 차스테인)는 세 아들을 다그치는 남편에게서 자식들을 최대한 보호하려 한다. 아버지와 장남의 사이는 속절없이 악화된다. 둘의 대립은 곧 엄격함과 자애로움, 세속적 성공과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삶, 공허함과 정신적 충만감의 충돌이다.

 서로 다른 우주의 존재들이 서로의 고유함을 인정하고 마침내 화해하는 마법 같은 순간은 과연 올까. 힌트는 ‘생명의 나무’라는 기독교적 뉘앙스를 풍기는 제목에 있다. 이미지와 음악을 한데 섞은 데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감정선으로 연결시키는 테렌스 맬릭의 연출은 가히 거장답다.

 ‘브래드 피트·숀 펜 주연’이란 문구에 현혹(!)돼 이 ‘영상명상록’ 같은 영화를 택한다면 배반감을 느낄지 모른다. 브래드 피트와 숀 펜은 서로 마주치는 장면도 없다. 초반 20분 가량은 우주가 생성돼 소멸하기까지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상으로 채워지니 더 생뚱맞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영화의 진면목은 그 다음부터다. 브래드 피트는 주연을 맡았을 뿐 아니라 공동제작에 참여했다. 한 편의 영화가 지갑을 채워주진 못하지만, 때에 따라선 영혼을 채워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배우는 알아차렸나 보다. 하긴 철학의 소용이란 게 워낙 그렇지 않던가. 2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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