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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73> 외환정책과 환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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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유로존 재정위기가 다시 부각되면서 9월 중순 이후 환율이 크게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환율 쇼크가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는 뉴스를 신문에서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실제로 9월 1일 달러당 1061.25원이던 원화가치는 그달 26일엔 1195.8원(종가 기준)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원화가치가 급작스럽게 뚝 떨어지자 당장 “물가가 걱정”이라거나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매도가 우려된다”는 기사가 쏟아집니다. 환율이 대체 뭐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요. 환율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안혜리 기자

‘환율 올랐다=원화가치 하락했다’는 뜻

환율은 하루 중에도 시시각각 변한다. 세계경기와 증시 상황 등 다양한 변수가 환율을 끌어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한 외환딜러가 외환시장에서의 환율변화를 모니터하고 있다. [중앙포토]

환율은 두 나라 돈 간의 교환비율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돈을 사고파는 시장(외환시장)에서 한국 돈과 미국 달러 등 서로 다른 통화를 매매할 때 적용하는 가격이라고 보면 된다.

이때 어느 나라 돈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환율은 두 가지 방법으로 표시할 수 있다. 외국 돈을 기준으로 표시하는 ‘외국 통화 기준 표시법’과 자기네 나라 돈을 기준으로 삼는 ‘자국 통화 기준 표시법’이다. 예컨대 외국 통화 기준 표시법이란 미국 돈 1달러를 사려면 우리나라 원화를 얼마나 내야 하느냐를 표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쓰고 있는 방식이다. 기준이 외국 돈이기 때문에 ‘환율이 올랐다’는 것은 ‘원화가치가 하락했다’는 뜻이고, ‘환율이 내렸다’는 것은 거꾸로 ‘원화가치가 상승했다’는 뜻이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어디서 누구에게 파느냐에 따라 물건값이 제각각이듯 환율도 거래 상대방에 따라 다르게 매겨진다. 외환거래는 크게 나누면 은행끼리 외화를 사고파는 ‘은행 간 외환 거래’와 은행이 은행 외의 개인이나 기업 등과 돈을 사고파는 ‘대(對)고객 거래’로 구분할 수 있다. 은행 간 거래는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 외환시장에서 결정된다. 그러나 대고객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결정되는 은행 간 환율을 감안해 외환을 파는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매일 고시되는 환율은 같아도 은행마다 환율이 조금씩 다른 건 이런 이유에서다. 국내에선 은행 간 외환시장은 원-달러 시장만 있다. 그래서 엔화나 유로화 등 다른 통화와 원화 간 환율은 국제 금융시장에 이들 통화와 달러 간 환율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산출한다.

자본시장 완전 개방 ‘ATM 코리아’ 별명 얻어

외환위기 당시 우리 국민은 금모으기 등 뜻을 합쳐 위기를 극복했다. 급락했던 원화가치도 이후 정상을 되찾았다.

우리나라는 다른 신흥시장에 비해 환율 변동성이 크다. 환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고 글로벌 금융환경에 따라 변화가 심하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자유변동환율제도를 택한 데다 자본시장까지 완전히 개방돼 있는 걸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외국 자본이 수시로 드나들 수 있다 보니 글로벌 경제위기가 벌어지면 외국 자본이 일시에 달러를 빼내간다. 그러면 갑자기 달러 가뭄이 생기면서 외환시장의 불균형과 쏠림이 심해진다. 달러가 부족하면 달러 값은 오르고 원화 값은 떨어지니 달러당 원화의 비율인 환율은 치솟을 수밖에 없다.

중국과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은 위안화를 달러에 고정하는 고정환율제도(페그제)를 써오다 2005년 위안화 절상을 허용하고 환율 변동폭을 확대했다. 그러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2008년 7월부터 2010년 6월 18일까지 달러당 6.8388위안에 고정하는 페그제로 복귀했다. 2010년 6월 중국인민은행은 위안화 절상을 용인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절상 속도는 완만한 수준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 증시의 외국인 주식 보유 비중은 2010년 말 현재 31.2%로 중국(4.9%·2009년 말)은 물론 호주(25.9%), 브라질(28.9%)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렇게 다른 신흥국에 비해 더 개방돼 있다 보니 외국 자본 유출입이 빈번할 수밖에 없다. 국제 금융시장에 충격이 올 때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금융시장에서 현금자동인출기(ATM)처럼 자금을 빼내간다고 해서 ‘ATM 코리아’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외환위기 겪으며 자유변동환율제 정착

국내 환율제도는 1945년 광복 이후 여러 차례 바뀌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12월 일일 환율 변동 제한 폭이 완전히 폐지돼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정착했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완전히 시장에만 맡겨두는 건 아니다. 원화가치가 단기간에 과하게 떨어지면 달러를 풀어 환율을 안정시키는 등 급격하게 오르내릴 때는 시장에 개입한다.

그렇다면 이 결정은 누가 하는 것일까. 환율정책이나 외환시장 안정에 대한 최종적 권한과 책임은 외국환거래법에 의거해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있다. 재정부 장관이 한국은행에 외국환평형기금 자금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도록 요청하면 한국은행은 이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은행은 법적으론 환율정책이나 외환시장 안정에 관한 권한과 책임을 가질 수 있는 명시적 근거가 없다. 그러나 실제 환율정책의 운용은 한국은행과 긴밀한 협의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또 외환시장 개입을 비롯한 일상적 외환시장 관리는 한국은행이 수행한다.

“환율 10% 내리면 경상수지 70억 달러 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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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말 844.9원에 머물렀던 달러당 원화가치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12월 23일 역사상 가장 낮은 1962원까지 떨어졌다. 2000년 9월 4일 1104.4원, 2007년 10월 31일엔 900.7원까지 올랐다. 그러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진 2008년 1570.3원까지 다시 떨어지기도 했다.

환율이 오르내리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원-달러 환율이 10% 하락하면, 다시 말해 원화가치가 오르면 연간 기준으로 경상수지가 70억 달러 정도 악화하는 것으로 정부는 추정한다. 똑같은 물건을 더 비싼 값에 외국에 내다파는 꼴이 돼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4%포인트 둔화한다. 그렇다면 환율이 올라 원화가치가 떨어지는 게 경제에 항상 좋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특히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환율이 급격히 오르면 물가가 급등하고 수요가 위축돼 경기침체 같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반면 환율이 낮아져도 여전히 적정 수준보다 높다면 수출에 반드시 나쁘다고 볼 수 없다.

참고서적=『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환정책』『알기 쉬운 경제지표 해설』

2000년대 환율 갈등 핵은 미·중
최근 전세계 환율전쟁으로 확대

미 상원이 최근 중국 위안화 환율을 겨냥한 무역 보복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미·중 간 환율전쟁이 또다시 불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법안은 무역 상대국이 자국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려 수출품 가격 경쟁력을 높이면 미 정부가 해당 국가 수출품에 보복관세를 물릴 수 있도록 했다.

환율전쟁이란 이처럼 각국이 자기 나라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외환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자국 통화 가치를 경쟁적으로 낮추는 걸 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통화전쟁이지만 보통 환율전쟁이라고 부른다. 한 나라가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면 이에 대응해 경쟁국들도 통화가치를 낮추려고 경쟁하고, 결국 전 세계적인 환율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진다.

과거 환율전쟁은 미국과 일부 선진국의 환율 조정이었다. 1985년 플라자합의가 대표적이다. 당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일본과 독일에 집중됐기 때문에 이들 세 나라끼리 환율을 조정하는 게 목표였다. 2000년대 들어 환율전쟁은 양상이 좀더 복잡하다. 그러나 핵심 축은 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 늘어나자 미국 정부와 의회는 중국 위안화의 저평가를 경상수지 적자의 주요인으로 주목하고, 중국 정부에 대해 환율 제도 변경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상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2005년 7월 21일 위안화를 한번에 2.1% 절상한 뒤 2008년 7월 20일까지 3년간 19.3%를 추가로 절상했다. 이에 따라 위안화 가치는 2005년 7월 20일 미 달러당 8.28위안에서 2008년 7월 말에는 6.8388위안으로 하락했다.

2010년은 환율전쟁이 더 큰 논쟁으로 번진 해다. 주요20개국(G20)은 2009년 9월 미 피츠버그 정상회의(사진)에서 세계경제의 균형 회복을 주요 어젠다로 채택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글로벌 불균형을 시정한다며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또 유럽 재정위기 이후 미 연준은 돈을 푸는 양적 완화 정책을 펴면서 달러화 약세를 유도했다. 그 결과 엔화와 여러 신흥국가 통화가 급속히 강세를 띠었다. 일본 정부는 2010년 9월 15일 6년반 만에 외환시장에 개입했고, 이를 계기로 많은 아시아와 중남미 국가들도 외환시장에 개입하거나 개입할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과 중국 간의 환율 갈등이 글로벌 환율전쟁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이후 2010년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경쟁적인 평가절하를 자제하기로 합의한 뒤 환율전쟁은 잠시 완화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위스가 지난달 유로화 대비 스위스 프랑 환율을 1.2스위스 프랑 이하로 떨어지는 걸 막겠다고 나서는 등 환율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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