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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우 기자의 확대경] 1회서만 이대호 세 번 거른 SK의 수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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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허진우
야구팀장

롯데가 1회 말 1사 3루에서 전준우의 우익선상 2루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1사 2루. 4번 타자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SK 포수 정상호는 마운드에 올라 김광현과 대화하고 내려왔다. SK 배터리의 선택은 고의 4구였다.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대호는 플레이오프 1차전 1회 1사 2루에서, 3차전 1회 2사 2루에서 모두 고의 4구로 출루했다. 3차전에서는 2사 1루에서 정면 승부를 하다 1루 주자가 폭투를 틈타 2루로 가자 포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을 받았다. 결국 이대호는 플레이오프 5차전까지 세 차례나 1회에 고의 4구를 얻었다. 나머지 두 차례는 1회가 삼자 범퇴로 끝났거나(4차전) 2사 1루에서(2차전) 유격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SK는 홍성흔을 병살타로 잡아내 위기를 넘겼다. 이대호는 4회 두 번째 타석에서 우전안타를 쳤다. 결과적으로 SK 배터리의 승리였다. 앞선 경기에서도 두 차례나 1회에 이대호를 고의 4구로 내보냈지만 실점하지 않았다. 5차전에서도 SK는 1회 위기를 1점으로 막아 초반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이 고비에서 무너졌다면 경기는 롯데 쪽으로 기울었을 수도 있다.

 1회에 나오는 고의 4구는 경기 초반 대량 실점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이례적인 작전이다. 그러나 SK에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이대호가 4차전에서 1점 홈런을 쳤지만 4차전까지 타율이 1할8푼8리(16타수 3안타)였다. 이대호의 다음 타자는 홍성흔과 강민호다. 홍성흔은 올 시즌 병살타 22개(1위), 강민호는 18개(3위)를 기록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1회 이대호에게 내준 고의 4구는 SK의 ‘이대호 맞춤 전술’이다. ‘롯데 중심 타자의 기를 살려 주지 않겠다’는 의도다. 이대호는 주자가 득점권에 있을 때 특히 무섭다. 올해 득점권 타율이 3할8푼5리로 시즌 타율(0.357)보다 좋다. 결국 SK는 이대호에게 방망이 휘두를 기회를 주지 않기로 했다. SK 이만수 감독의 ‘헐크 야구’에는 이렇게 섬세한 면도 숨어 있었다.

허진우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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