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호남·비서울대 대법관 … 양승태, 벽을 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박보영 대법관 후보자가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소송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다. [법률신문 제공]

“양승태 대법원장이 안정감을 유지한 채 대법관 사회의 벽을 깨는 시도를 했다.”

 21일 대법관 제청을 두고 법원의 한 판사가 한 말이다. 새 대법관 후보자로 제청된 김용덕 법원행정처 차장이 안정을 대표한다면 박보영 변호사는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 노력을 상징한다는 의미다.

 박 후보자 제청으로 국내 사법 사상 세 번째 여성 대법관 탄생을 앞두게 됐다. 현재까지 여성 대법관은 김영란(55·사법연수원 10기·현 국민권익위원장) 전 대법관과 전수안(59·8회) 대법관 등 두 명이 배출되는 데 그쳤다. 김 전 대법관이 지난해 8월 퇴임한 상황에서 전 대법관의 임기가 내년 7월 만료되면 여성 대법관의 명맥이 끊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박 후보자는 올 1월부터 회원이 1400명에 이르는 여성변호사회 회장을 맡아 왔다.

김용덕 대법관 후보

 또 한양대 출신인 박 후보자가 대법관에 합류하면 비(非)서울대 티켓이 유지된다. 현재 양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가운데 다음 달 퇴임하는 김지형 대법관(원광대)을 빼면 13명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또 학계 출신인 양창수 대법관과 검찰 출신인 안대희 대법관을 제외하면 모두 판사의 길만 걸어온 이들이다. 아울러 이용훈 전 대법원장 퇴임 후 대법관 중 호남 출신이 이상훈(광주) 대법관과 김지형(전북 부안) 대법관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호남 대법관이 한 명 늘어나는 효과도 보게 됐다.

 박 후보자를 두고 법원 안팎에서 ‘다양성의 아이콘’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대법원 관계자는 “박 후보자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박 후보자가 처음엔 고사했으나 주위에서 ‘여성 대표’라는 점을 들어 설득했다”고 전했다. 박 후보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회 인사청문회도 거쳐야 한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김용덕 후보자는 정통 엘리트 법관이다. 법원행정처 법정국장,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등을 거치며 재판 업무와 사법행정에 두루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5년부터는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으로 4년 넘게 근무하면서 대법관들을 보좌했는데 당시 대법관이던 양 대법원장과는 근무기간이 거의 겹친다. 지난 2월부터는 법원행정처 차장을 맡았다. 법원 내 대표 학술단체인 민사판례연구회 회원, 상사법무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민법 주해』 『주석 신민사소송법』 등을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선후배 법조인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다.

 김 후보자는 경기고를 수석 졸업하는 등 수석(首席)을 놓쳐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수석’ 전문가로 불리는 이유다. 사법연수원(12기)도 수석으로 수료했다. 연수원 수석 수료자 가운데 대법관 후보가 된 건 김황식(4기) 국무총리에 이어 두 번째다.

 두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법관에 임명되면 대법원의 이념 지도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들에게 대법관 자리를 물려주게 된 박시환·김지형 대법관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돼 왔다. 이들과 함께 ‘독수리 5형제’로 불려온 김영란·이홍훈 전 대법관은 이미 퇴임한 상황이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박 후보자 등의 진입으로 전원합의체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동현·김현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