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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등 두드려주는 유일한 외국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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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마이클 그린
미국 CSIS 고문

지난 14일 이명박 대통령은 워싱턴의 유서 깊은 블레어하우스에서 역대 미 정부 출신 고위 외교전문가들과 조찬을 했다. 참석자들은 필자를 포함해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 시절부터 현 오바마 대통령 정부에서 봉직한 사람들이었다. 이 대통령을 기다리는 동안 참석자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역대 국빈방문을 모두 비교한 끝에 이 대통령의 방문이 미국과 아시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이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존 햄리 소장은 이 대통령의 이름이 박힌 ‘루이스빌 슬러거’ 팀의 야구 배트를 전달하면서 “대통령께서 이번 주에 홈런을 쳤기에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참석자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박수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다.

 이번 국빈방문에서 주목해야 할 첫 번째는 오바마 대통령이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과 긴 시간을 함께했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친한 친구가 많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조지 H W 부시나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전 대통령들은 친구도 많고 주변 사람들을 잘 활용하는 외향적 정치인들이었다. 이에 비해 차분하고 생각이 많은 성격의 오바마 대통령은 서로 등을 두드려주는 외국 친구라고는 이명박 대통령뿐일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으로부터 일자리 문제 등 내정과 관련해 집중 공격을 당하는 와중에도 워싱턴의 유명 한식당 우래옥에서 식사를 하는 등 사흘 동안이나 이 대통령과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이 국빈 만찬에서 턱시도를 입고 만나는 모습은 미국 신문들에 크게 실렸다. 여러 면에서 두 사람은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보수적인 사업가 출신인 데 비해 오바마 대통령은 진보적인 시민운동가이자 지역 정치인 출신이다. 그럼에도 좋은 관계로 인해 두 사람은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큰 인물이 됐고 이는 양국 모두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방문 기간에 맞춰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이 비준된 것도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청와대는 비준 성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미 의회의 공화당·민주당 의원들이 늦지 않게 비준함으로써 이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기쁜 마음으로 연설할 수 있었다. 공화당 하원의장의 초청을 받아 현장에 있었던 필자는 청중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대통령이 한국의 성공을 소개할 때, 양국이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다고 강조할 때, 그리고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 군인들의 공헌에 감사할 때는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특히 3명의 참전군인 출신 의원들을 이 대통령이 호명하며 감사를 표시할 때는 오랫동안 박수가 이어졌다. KORUS는 이 대통령의 성공적인 미국 방문 자체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이를 계기로 오바마 정부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만일 의회가 제때 비준하지 않았다면 미국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물론 다음 달 아시아를 순방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아시아의 무역자유화를 주도하는 미국으로선 여간 힘 빠지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방문은 또 중요한 두 가지 점을 일깨웠다. 우선 미국 사회에서 한국 교민사회가 정계와 경제계 모두에서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국빈 만찬에 한국 출신 미국인들이 다수 초대됐고 이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서 미국 사회가 한국인들을 포용해준 데 대해 감사하는 대목에선 열광적인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대통령이 일깨운 또 한 가지는 권위주의 체제가 여전히 지배적인 아시아에서 한국이 보편적인 민주적 가치의 ‘등대 국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 관계를 흔들 수 있는 문제는 여전히 많다. 경제대국인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에선 미국에 너무 편향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선동가들과 포퓰리스트들이 KORUS는 물론 한·미 동맹의 진전에 반대할 우려도 있다. 미국의 예산 삭감 논란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그러나 2011년 10월 중순 이 대통령은 향후 10년 동안 한·미 동맹의 든든한 디딤돌을 쌓았다. 그의 노력은 양국의 조지 W 부시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작한 KORUS 같은 사안을 토대로 이뤄졌다. 미국에선 보수적인 미국 대통령이 시작하고 진보적인 대통령이 이어받은 한국과의 관계 증진이 열매를 맺었고 마찬가지로 한국에선 진보적인 대통령이 시작한 일을 보수적인 대통령이 이어받아 양국관계의 미래를 더욱 단단하게 결속했다. 양국관계의 밀월이 절정에 오른 현시점에서 우리가 이룬 것들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