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난 네 친구잖아” 노래 속 잡스를 보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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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애플 본사에서는 스티브 잡스를 기리는 직원들의 추모식이 열렸다. 최고경영자 팀 쿡이 1만여 명의 직원 앞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쿠퍼티노 AP=연합뉴스]

“시리, 그런데 넌 남자야, 여자야?” 스티브 잡스(애플 창업자)가 묻자 시리가 답했다. “성별은 아직 안 정해졌는데요.”

 애플 아이폰4S에 탑재된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 ‘시리’를 개발할 때의 일이다. 경영진은 “아직 음성인식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잡스는 지금 꼭 써봐야겠다고 우겼다. 그러고는 장난스럽게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잡스의 친구이자 애플 이사회 멤버인 빌 켐벨이 19일 사내 잡스 추모행사에서 공개한 일화다.

 미국 시간으로 이날 오전 10시 미국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추모식은 웃음과 눈물, 음악이 어우러진 문화축제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비롯한 외신들이 참석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행사내용을 보도했다.

 후계자인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눈물로 잡스를 보냈다. 쿡은 그가 얼마나 완벽함과 탁월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는지를 직원들에게 설명했다. 잡스와의 우정을 이야기할 때에는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중단해야 했다. 애플 이사회의 일원인 앨 고어 전 부통령도 ‘내 오랜 친구 잡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애플 수석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는 잡스의 기인적 면모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소개해 청중에게 웃음을 안겨줬다. 잡스는 누군가 새 제품 디자인을 제안하면 그걸 ‘그 멍청한 거’라고 부르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폰을 봤을 때는 달랐다. 그는 처음엔 침묵했고 잠시 후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라 존스와 콜드플레이는 음악으로 잡스를 기렸다. 둘 다 잡스와는 인연이 깊다. 노라 존스는 2009년 잡스가 비디오 재생이 가능한 아이팟을 소개하는 자리에 우정출연해 자신의 신곡을 불렀다. 콜드플레이의 보컬 크리스 마틴은 2010년 아이팟터치 영상통화 발표회에서 공연해 잡스를 지원했다. 마틴은 이날 공연 후 “각자의 원래 자리로 복귀해 일하는 게 잡스가 원하는 일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추모식이 진행되는 동안 미 전역의 애플스토어는 흰 천으로 매장을 가리고 영업을 중지했다.

직원들이 가게 안에서 추모식 실시간 중계 영상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애플 캠퍼스 곳곳에는 청년 잡스가 애플 컴퓨터를 안고 있는 사진을 비롯해 잡스의 사진들이 대형 걸개로 제작돼 걸렸다. 또 애플의 사기와 캘리포니아 주기, 성조기가 반기로 게양됐다. 애플은 잡스의 추모 웹페이지 ‘리멤버링 스티브’를 열어 전 세계에서 잡스를 기리며 보내온 글들을 게시했다.

 한 시간 반가량의 추모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날 때였다. 스피커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의 주제가인 ‘유브 갓 프렌드 인 미(You’ve Got a Friend in Me)’.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가 픽사를 인수, 10년간 투자해서 선보인 영화다. 쿠퍼티노의 1만여 명 인파, 전 세계 애플스토어의 직원들은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잡스를 보냈다. “네 앞에 놓인 길이 험난할 때… 그리운 집 떠나 이역만리를 걸을 때도… 그냥 이걸 기억해. 나는 너의 친구잖아.”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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