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무사가 왜 대학교수를 사찰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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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국군 기무사령부 요원 2명이 조선대학교 기광서 교수의 e-메일을 해킹해 자료를 빼내는 사찰행위를 했다가 구속됐다. 군사정권 시절 무소불위로 인권침해 행위를 자행했던 보안사령부의 망령이 되살아난 느낌이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이 사건을 은폐 내지 축소하려고 시도하다가 국정감사에서 지적되자 뒤늦게 “요원들의 개인적 범행”이라고 얼버무리는 상황이다. 지난 4월에는 원세훈 국정원장과 차장 등이 지난해 있은 이화여대 총장 선거에 개입하려 시도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원 원장은 보도 직후 국회에서 총장 선거 개입 의혹을 부인했으나 국정원 간부가 이화여대 이사진을 접촉한 사실 자체는 시인해 의혹을 남겼다. 국가안보를 지키라고 만든 정보기관들이 도대체 왜 이러는가.

 기무사령부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나라 가운데 사실상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수 군 수사 및 사찰기관이다. 간첩을 잡고 군내 보안을 책임지며 군인들의 불온한 움직임을 사찰하는 것이 주임무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의 반역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목적에서 방첩부대의 기능을 확대해 설립한 보안사령부를 이어받은 기관이다. 보안사령관 출신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보안사령부는 1980년대 국가안전기획부를 무력화할 만큼 무소불위의 막강한 사찰기구가 됐다. 그러면서 군은 물론 민간을 대상으로 한 전방위적인 불법사찰을 자행해 지탄을 받다가 민간 정부가 들어서면서 철퇴를 맞았다. 이후 부대 명칭을 기무사령부로 바꾼 뒤 군 전문 보안기관으로서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 결과 최근 사령부를 경기도 과천으로 이전하는 등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간의 정상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됐다.

 이번 사건은 기무사령부가 여전히 과거의 어두운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극히 일부겠지만 기무사와 국정원 등 정보기관엔 독재국가 시절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하며 특혜를 누렸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세력이 남아 있는 건 아닌가. 정보기관 내 ‘어둠의 그림자’를 지울 대책을 다시 마련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