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food&talk ⑬ 사진작가 조세현의 돼지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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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10여 년 전 지적장애인 단체를 촬영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신부님인 외삼촌의 부탁으로요. 사진을 촬영할 때마다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이 저를 너무 행복하게 했죠. 그때부터 ‘소외계층을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잘하는 일을 통해 그들과 기쁨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봉사를 하게 됐어요. 아프리카에도 직접 방문해 기아 현장을 사진에 담아 와 사진전을 열기도 했어요. 교육은 물론 치료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해 안타깝게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를 보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죠.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지만, 저도 가끔은 일상이 너무 바빠서 힘들고 지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음식으로 위안을 받죠. 특히 채소를 올리브 오일에 구워 먹거나 쪄먹는 걸 좋아해요. 심신이 지쳤을 때 올리브 오일로 요리한 채소를 먹으면 왠지 재충전되는 것 같거든요. 저는 요리를 할 때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요리나, 강한 양념으로 맛을 내는 요리는 지양하는 편이에요. 싱싱한 재료를 선택하고, 그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리는 것이 요리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하죠.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큰딸이 만들어 준 돼지가지예요. 큰딸은 영국에서 대학생활을 했어요. 오랜 해외유학 생활 때문인지 한식보다는 이탈리아 요리 같은 양식을 더 잘해요. 가장 잘하는 요리는 스파게티나 피자인데 이 가지 요리는 저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 준 거예요. 항상 먹는 스파게티나 피자가 아닌 특별한 요리를 아빠인 저만을 위해 만들어줬다는 점이 감동적이었죠. 돼지가지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가지에 토마토 같은 채소를 꽉 채워서 만드는 요리예요. 먼저 가지를 절반으로 자른 다음 칼과 숟가락을 이용해 가지 속을 긁어내요. 긁어낸 속은 잘게 다져요. 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른 뒤 양파와 파프리카, 다진 가지 속을 볶다가 토마토를 넣고 골고루 섞어요. 그렇게 섞은 다음에 가지 껍질 속에 잘 채워넣고 모차렐라 치즈와 빵가루를 뿌린 뒤 오븐에 굽죠.

돼지가지의 가장 특별한 점은 갖은 채소를 하나로 합쳐서 구워 먹는다는 점이에요. 가지·토마토·파프리카의 싱싱함에 치즈의 고소함까지 더해져 정말 풍미가 좋아요. 마치 오징어 순대 같이 모양도 재밌고 색깔도 알록달록하죠. 집에서도 만들어 보세요. 아이들도 아주 좋아해요. 실제로 제가 이 요리를 딸에게 배워서 저희 사진 스튜디오 식구들에게 해준 적이 있어요. 그때 정말 칭찬을 많이 들었어요. 센스 있는 선생님으로 인정받게 해준 고마운 요리이기도 하죠. 돼지가지를 만들 땐, 신선한 재료 구입이 가장 중요해요. 특히 가지가 통통해야 돼요. 완성된 돼지가지는 메인요리로 먹어도 좋고, 스테이크나 생선 요리의 사이드 음식으로 먹어도 아주 잘 어울린답니다.

정리=이상은 기자

● 조세현은 …

1958년 경상북도 고령 출생.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 논현동에서 ‘아이콘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 1992년 올해의 패션사진가상, 2009년 이해선사진문화상, 2011년 대통령 표창 등을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문화예술 강사와 중앙대 사진학과 겸임교수 등의 경력이 있다. ‘조세현 작가와 사진작업을 안 한 사람은 스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 사진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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