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베이스에서 새로 '시작'하자!

중앙일보

입력

97년 한국에서 인터넷 비즈니스가 시작될 때 기업 발전 모델은 커뮤니티 확보와 콘텐츠 제공, 커머스 등 ‘3C 모델’에 집중됐다. 하지만 3C 모델은 ‘선점하면 무엇인가 되겠지’하는 집단 최면과 막연한 기대감으로 3년이란 시간을 벌어주었을 뿐이다. 이제 닷컴들은 실질적으로 돈 벌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하는 때를 맞고 있다.

이젠 비즈니스모델 아닌 수익 창출모델이 화두

블랙먼데이 이후 테헤란밸리가 난리다. 연일 거듭되는 주가 하락과 M&A(인수·합병)가 몰아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으로 모두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동안 BM(Business Model)에 대한 걱정으로 온 밤을 지새우더니 이제는 수익 모델을 고민하며 온통 날밤을 샌다. “전세계의 인터넷 기업들이 수익 모델이 뭔지도 모르면서 분명히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집단 최면에 걸려 있다”라는 모독적인 발언이 인정받을 만한 분위기다.

97년 한국의 인터넷 비즈니스가 시작된 이래 거의 대부분의 인터넷 기업 발전 모델은 커뮤니티 확보와 콘텐츠 제공, 이후 확보된 회원과 양질의 콘텐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커머스 등 ‘3C 모델’이었다. 커뮤니티가 확보되면 자연스럽게 콘텐츠가 발생될 것이며, 전자상거래로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블랙먼데이를 가져온 것이다.

블랙먼데이가 2000년 상반기에 몰아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예견되었고, 인터넷업계의 모든 전문가가 그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경험적으로 손익분기점이 3년 차에는 확보돼야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수 있다는 벤처업계의 과거를 돌이켜 본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다. 97년 인터넷 비즈니스가 태동한 이래 이제 막 3년이 지났다. 이젠 수익 모델을 보여줘야 미래 가치를 추정할 수 있는 시기다. 막연했던 미래 가치를 정교한 미래 가치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다.

따라서 수많은 닷컴 기업들이 양성된 99년엔 인큐베이팅과 기존 오프라인의 강자들을 닷컴 기업으로 전환시켜 주는 이트랜스포메이션이 중요했다. BM을 확보하고 대·중소기업의 신규 비즈니스 기회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수익 모델을 고민할 여력이 없는 시기였기 때문에 선점 효과와 수익체증의 법칙에 근거한 회원 수 확보 경쟁, 페이지 뷰 증가 경쟁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일단 살아남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믿었고, 다행스럽게도 닷컴 기업을 향한 투자자의 아낌없는 손길 덕분에 자금력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망하려고 해도 망할 방법이 없을 만큼 자금이 지원됐다. 닷컴들은 모든 자금을 홍보와 광고에 집중시켜 선점 효과를 누리고자 했다. 인터넷 비즈니스의 버전 1.0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이젠 인터넷 비즈니스 버전 2.0이 시작되고 있다. 이젠 BM이 아닌 매출창출모델을 확보해야 한다. 온라인 기업의 특성과 온라인 이용 소비자의 특성·기대치를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99년 하반기 이후 사업을 시작한 인터넷 벤처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수익 모델을 확보하고 있다. 그때만 해도 수익 모델을 제시하지 않으면 자금 지원을 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반면 당시 닷컴 기업으로 성장했던 기업들은 수익 모델을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답이 없는 게 아니라 답을 찾을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제 답을 찾기 위해 기업의 경영/전략을 분석할 수 있는 프로세스와 새로운 수익창출모델을 만들 수 있는 창조성이 필요하다. 기존의 프로세스를 분석/진단하고 BPR (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물론 창조성을 갖고 제로 베이스에서 새로 작업해야 한다. 웹 클리닉도 중요하다.

현재의 웹 사이트를 진단하고 운영 방안과 전략, 문제점을 찾아내 효과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정보 구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작업이다. 지금까지 웹 사이트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게 문제였다면, 이제부턴 그 웹 사이트를 전면 수정하고 운영 전략을 진단·개선해야 한다.

더불어 가치평가와 M&A가 한층 중요해지고 있다. 인터넷 기업들의 M&A 사태가 곧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M&A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 가치평가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터넷 비즈니스는 분명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 인터넷 기업 부닷컴이 자금난으로 도산했으며, 회계 컨설팅업체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는 상장된 영국 인터넷 기업 28개 가운데 25개가 오는 8월까지 보유 현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했다. 적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선점을 위해 달음질쳤던 닷컴 기업들이 돈을 벌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는 때가 오고야 말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