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창업의 꿈, 사업계획서 쓰면 손에 잡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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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창업자인 김정훈(오른쪽) 퍼플웍스 대표가 7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하나스퀘어 강당에서 열린 ‘캠퍼스 CEO’ 수업에서 강의하고 있다. 이 수업은 예비 창업가들을 위한 실전 중심 강의 프로그램이다. [변선구 기자]


7일 오후 1시 서울 안암동 고려대 하나스퀘어 지하 1층 강당. ‘미래의 CEO(최고경영자)’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 학교 교양 강의인 ‘캠퍼스 CEO’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다. 이날 수업에선 교수뿐 아니라 창업 선배, 벤처 투자자가 강단에 섰다.

 “창업을 하고 싶지만 실패할까 봐 고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수강생)

 “창업 후에도 고민이 산더미 같은데 창업 전부터 고민한다면 뜯어말리고 싶습니다. 시작부터 고민하면 버티기 힘듭니다.”(김정훈 퍼플웍스 대표)

 70여 명의 참석자들은 오후 7시까지 이어진 릴레이 강의에서 끝없이 질문을 던졌다. 최혜윤(24·이화여대 물리학과)씨는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직장인이 되긴 싫다”며 “CEO는 타고나는 거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이 수업은 선물이자 기회”라고 말했다.

 캠퍼스에서 창업 강의가 인기를 끌고 있다. 고려대·이화여대에 개설한 ‘캠퍼스 CEO’ 과정이다. 2008년 고려대에서 시작한 이 강의의 특징은 철저하게 실전 중심이라는 것. 교수뿐 아니라 선배 창업자들이나 벤처투자자, 기업 실무자도 수시로 강단에 선다. 강의를 내실 있게 만들기 위해 수강생은 20명으로 제한했다.

차원용(51) 고려대 교양학부 교수는 “창업 이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회사 경영을 맛볼 수 있게 한다”며 “강의실을 벗어난 예비 창업가 양성 과정”이라고 소개했다.

 교수진은 학생들이 창업 공모전에 참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투자자를 연결해 주는 등 ‘멘토’로 나선다. 학생들은 팀을 이뤄 학기말까지 사업계획서를 낸다. 계획서를 평가하는 것은 벤처 투자자들이다. 벤처투자자인 이택경(41) 프라이머 대표는 “사업계획서에 생각보다 참신하고 실용적인 아이디어가 많아 놀라곤 한다”며 “실제 투자를 받아 억대 연매출을 올린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강단에 선 김정훈(30) 퍼플웍스 대표가 그런 경우다. 김 대표는 2008년 2학기에 이 수업을 들었다. 지난해 4월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 같은 뉴미디어를 활용한 옥외 광고업체를 세웠다. 김 대표는 “올 상반기까지 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며 “창업하겠다는 막연한 환상이 사업 계획서를 준비하면서 현실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 수업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자 올 초부턴 이화여대에서도 강의를 시작했다. 염재호(56) 서울시산학연협력포럼 회장(고려대 행정학과 교수)은 “강의를 듣고 곧바로 창업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창업 마인드’를 갖고 취업하는 학생들을 배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취업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늘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예비 CEO’들은 명함을 내미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수강생들이 직접 만든 명함이었다.

글=김기환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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