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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어린 시절 보낸 중년 이상 세대에 묻습니다 … 비만세를 어떻게 보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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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50대 이상 세대에게는 어린 시절 단것과 기름진 것을 갈망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먹거리라면 무슨 종류든 ‘없어서 못 먹던’ 시대였다. 어린이들의 외양도 요새같이 곱고 해맑지 못했다. 머리에는 기계충, 배 속에는 회충이 있었다. 부스럼·사마귀에다 도장버짐 같은 피부병도 흔했다. 영양 부족 탓이었다. 고기가 너무 귀해 소증(素症·푸성귀만 먹어 고기가 당기는 증세)도 많았다. 어른들은 “소증 나면 병아리라도 쳐다보렴”이라며 놀렸다. ‘굶은 개가 언 똥 마다하랴’던 시절이었다. 요즘처럼 가려 먹는 시대에 자란 젊은이들에게는 딴 세상 얘기다.

 70년대 들어 새우깡·라면땅·뽀빠이·자야 같은 스낵류(類)가 등장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칠성사이다가 외롭게 소풍길에 동행하던 청량음료 시장도 환타·콜라·오란씨·써니텐 등이 나서면서 전국시대에 돌입했다. 70년대 아이들은 뽀빠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친구, 라면을 박스째 사 놓고 먹는 동네 집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4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청량음료·스낵류는 ‘공공의 적’ 신세가 됐다. 포화지방·설탕·소금·탄수화물이 많아 영양 불균형을 낳고 살만 찌운다는 이유에서다.

 덴마크가 이달부터 2.3% 이상의 포화지방산 함유 제품에 대해 비만세(稅)를 물리고 있다는 소식에 중년 이상 세대는 복잡한 소회를 느꼈을 것이다. 우리나라 성인 비만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지만, 증가율만큼은 심상치 않다. 이제 우리도 이만큼 살게 됐구나 하고 자위해야 할까, 아니면 지천인 먹거리 속에 무엇을 고를지 고민하는 자식세대를 부러워해야 할까.

 지난 일요일 KBS-2TV ‘개그콘서트’의 살 빼기 체험 코너 ‘헬스 걸’에서 개그우먼 이희경이 드디어 60㎏ 밑으로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동료 권미진도 12주 만에 37㎏을 뺐다. EBS-TV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진화의 비밀, 음식’에 소개된 ‘구석기 식단’도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던 구석기인들처럼 탄수화물이 아닌 육류·과일·채소·견과류를 섭취하고 몸을 많이 움직여 살을 빼자는 얘기다. 구석기 시대도 환경이 제각각인데 어느 지역 음식이 기준인지, 혹시 살 빼기 열풍에 편승한 상혼(商魂)이 낀 건 아닌지 의문이 들지만 여하튼 과체중을 면하자는 뜻만은 사고 싶다.

 우리도 보건복지부 보건의료미래위원회 등에서 고열량 정크푸드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물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비만세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4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저소득층 청소년일수록 값싼 라면·스낵류를 많이 섭취해 뚱뚱하다는 사실이다. 간접세인 비만세는 형편이 어려울수록 부담이 크지 않겠는가. 더 나은 대책을 궁리해야 할 듯하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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