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챔프다 … 케빈 나, JT 슈라이너스서 PGA 첫 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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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케빈 나가 4라운드 18번 홀을 파로 마감해 우승을 확정한 뒤 환호하고 있다. PGA 데뷔 후 7년간 211번째 대회 만에 차지한 첫 우승이다. [라스베이거스 AP=연합뉴스]

“내가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우승할 수 있을까요?”

 스물여덟 살 청년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어머니에게 묻곤 했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승리에 대한 강박증이 청년을 옥죄었다. 밤이 되면 ‘준우승의 악몽’에 시달렸다. 주위에선 그를 믿었지만 청년은 자신을 의심했다. 그에겐 PGA 첫승이 절실했다. 그 누구보다 자신을 믿는 어머니, 그리고 백혈병 투병 중인 아버지에게 우승 트로피를 바치고 싶었다.

 케빈 나(28·한국 이름 나상욱). 1983년 9월 15일 서울에서 태어나 8세 때 부모(나용훈-정혜원)를 따라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민간 재미동포다. 소년 시절부터 프로골퍼의 꿈을 키운 그에게 PGA 투어 첫승은 거짓말처럼 다가왔다. 케빈 나는 3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서머린TPC(파71·7223야드)에서 열린 저스틴 팀버레이크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에서 데뷔 7년 만에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전날 17언더파로 닉 와트니(미국)와 공동선두에 오른 케빈 나는 최종 4라운드에서 6타(버디 8, 보기 2개)를 줄여 합계 23언더파를 기록해 와트니(21언더파)를 2타 차로 따돌렸다. PGA 투어 대회 211경기 만에 일군 가슴 벅찬 승리였다. 로이터 통신은 “케빈 나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잭팟을 터트렸다”고 보도했다. 케빈 나는 우승상금으로 79만2000달러(약 9억3000만원)를 받아 상금랭킹이 33위(시즌 상금 225만 달러·약 26억5000만원)까지 치솟았다. 또 2013년까지 PGA 투어 출전권을 확보했다. 로이터 통신은 ‘17번 홀에서 터진 43피트(13m)의 버디 퍼트가 승부를 갈랐다’고 썼다.

 케빈 나는 2타 차 단독 선두로 전반 9홀을 마쳤다. 그러나 와트니의 반격이 만만치 않았다. 와트니는 13번 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 1타 차로 추격했고 케빈 나는 14번 홀(파3)에서 티샷을 벙커에 빠뜨리는 바람에 1타를 잃었다. 다시 공동 선두. 케빈 나는 15번 홀(파4)에서 17번 홀(파3)까지 3개 홀 연속 버디를 낚아 승기를 잡았다. 사실상 우승을 확정한 17번 홀의 13m짜리 퍼트가 성공하자 승리를 예감한 듯 포효했다.

 그는 “어젯밤에도 2위로 대회를 마치는 악몽을 꿨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PGA 투어에서 활동한 케빈 나는 2005년 FBR오픈과 크라이슬러 클래식, 지난해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등 세 차례 대회에서 준우승에 그쳤다. 아홉 살에 골프채를 잡은 뒤 미국 주니어 무대에서 100차례 이상 우승한 골프 천재가 PGA 투어 첫승을 올리기까지 예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백혈병 투병 중인 아버지의 병세도 좋아졌다.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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