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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망명 각오돼 있으면 내 비자금 문제 수사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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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호 10면

10월 24일, DJ와 YS가 청와대에서 영수회담을 했다. YS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고 했고, DJ는 YS의 퇴임 후 안전을 약속했다. 정작 여당인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는 YS에게 탈당을 요구하면서 청와대 회동을 거부했다. 집권당은 몰락하고 있었다. [중앙포토]

‘인간 김대중 이야기’ 연재를 시작한 게 2월 하순인데 벌써 7개월이 흘렀다. 다음 호가 30회다. DJ가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장면인데 거기서 일단락 지으려 한다.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는 물론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건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자. 이번 호에선 지금까지 한번도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비화를 소개한다. 선거 막판에 신한국당이 폭로한 이른바 ‘DJ 비자금 사건’ 관련이다. DJ가 YS(김영삼 대통령)와 어떻게 담판을 했고, 김태정 검찰총장과 YS 사이에선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장성민 전 의원 인간 金大中 이야기<29>DJ와 YS의 마지막 승부

1997년 10월 7일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DJ가 동화은행에 근무하던 처조카 이형택을 통해 670억원의 비자금을 관리해 왔다는 내용이었다. 강 총장은 또 DJ가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90년과 91년 사이에 적어도 6억3000만원을 추가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는 “가소로운 일”이라는 논평을 냈다. DJ가 여론 조사에서 앞서가자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가 막가파식 폭로로 국면을 전환시키려 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8일 오전 6시쯤 일산 자택에 도착하자 DJ가 조간 신문들을 죽 펼쳐놓고 제목을 읽고 있었다. “장 동지, 못된 장난질이 이제 시작되는데 이걸 잘못 다루면 내가 당선되고 안 되고를 떠나 김 대통령과 현 정권이 불행하게 돼요. 모든 지혜를 총동원해서 전략을 짜내야 해요. 내 이런 심정을 잘 알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DJ가 물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대응하고 수습할지 얘기해 보세요.”

“총재님은 전면에 나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흙탕물 속으로 총재님을 끌어들여 만신창이를 만들고 줄행랑치겠다는 것 아닙니까. 당에서 정치공방으로 몰아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DJ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건 내 문제인데 내가 해명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국민들이 납득할까?”
“신한국당한테 밝히라고 역공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공작으로 몰아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DJ가 말했다. “YS가 나 떨어뜨리겠다는 것 아니겠어? 검찰이 수사를 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대응하지?”

“총재님도 대선을 보이콧하고 YS 하야 투쟁에 돌입하셔야죠.”
“그렇게 되면 나라가 뭐가 되겠어. 지금은 그렇게 너무 멀리 가지 말고 당에서 계속 대응하면서 하나하나 양파 껍질 벗기듯이 진실을 밝히는 쪽으로 가자고.”

하지만 상황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았다. 신한국당 강 총장은 10일 2차 폭로를 했다. “DJ가 10여 개 기업들로부터 134억7000만원을 받았다”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검찰에 고발한다는 얘기도 했다. DJ는 “절반은 내가 이름도 모르는 기업들이고 완벽히 조작된 파렴치한 행위”라고 반박했지만 별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문제는 검찰의 태도였다. 정권 말기에는 예외 없이 정치적 사건이 터져 나오는데 검찰이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선거판이 요동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검찰이 과연 유력한 대선 후보인 DJ를 소환할 것이냐가 관건이었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정국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DJ는 처음엔 이 폭로극의 배후에 YS가 있다고 의심했다. 폭로 당사자인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이 YS직계인 데다 92년 대선자금까지 불똥이 튈 수 있는 사안이니 사전에 YS가 허락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DJ는 YS와 직접 담판을 짓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YS에게 영수회담을 제의한 것도 그래서였다. “대통령이 회담을 허락해 주시길 바란다”는 표현을 써가며 최대한 몸을 낮췄다.

10월 16일 오전, DJ는 경남 김해에서 열린 김해김씨 추향대제에 JP와 함께 참석했다. 다음 스케줄은 창원으로 가는 거였지만 급히 서울로 상경했다. YS의 비서실장 출신인 김광일 청와대 정치특보와 약속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이 만남을 중재한 건 국민회의 비례대표 의원이던 이동원 전 외무장관이었다.

오후 3시쯤 DJ가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경호원들과 비서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DJ가 말했다. “오늘은 다들 돌아가세요. 장 동지는 내 차에 타고.” 어리둥절해하는 경호원들을 뒤로 하고 DJ의 승용차는 전속력으로 서울로 진입했다. 하지만 약속 장소로 바로 가지 않고 남산을 한참 동안 빙빙 돌았다. 미행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조선호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한데 7층 객실까지 올라가는 게 문제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남들이 알아볼 게 뻔했다. 나는 미리 준비해 간 겨울 골프모자를 DJ에게 내밀었다. 앞에는 차양이 있고 귀까지 덮이는 검은색 모자였다. “총재님, 이거 쓰셔야겠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DJ는 모자를 눌러쓰고 등을 돌린 채 벽 쪽을 보고 섰다. 내가 그 앞을 가리고 섰다. 1층에서 몇 명이 우르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갑자기 누가 아는 척을 했다. “아니, 장 비서 여기 웬일이야? 총재님은 어디 계시고? 누구 중요한 사람 만나러 온 거 아냐?” 심장이 철렁했다. LA타임스 한국 지국장인 지정남 기자였다. 조선호텔 3층의 지국 사무실로 돌아가던 길이라고 했다. “아이고, 선배님도, 중요한 인물을 이런 공개적인 곳에서 만나겠어요?” 혹시라도 뒤쪽에 DJ가 있다는 걸 알아챌까 조마조마했다. “그래, 혹시 기삿거리 있으면 알려줘.” 지 기자는 별생각 없이 그렇게 말하고 내렸다. 십년감수였다.

7층 객실에서 DJ와 김광일 특보는 1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다. 끝난 뒤에도 남의 눈에 띌세라 DJ가 혼자 나왔다. 김 특보는 30분 뒤에 그 방을 나오기로 약속했다. 일산 자택에 도착해 단 둘이 있게 되자 DJ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YS는 중립이고 강삼재가 터뜨린 것은 김 대통령의 의중과는 상관이 없다고 하던데?” 그러면서 김 실장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고 말해줬다.

“만일 중립이라면 대통령이 검찰에 수사 중단을 요청해라, 그래야 믿을 수 있다. 검찰이 수사를 하면 내 지지자들은 나를 대통령에서 떨어뜨리기 위한 방해공작으로 볼 것이다. 정국은 예상할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게 된다. 수사를 해도 선거가 끝난 다음에 해라. 그래야 퇴임 이후에 (YS가) 안전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나도 더 이상 당할 수는 없다. 이제는 이판사판이라는 각오로 갈 수밖에 없다. 내 지지자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나도 모른다. 광주를 비롯한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나도 김영삼 대통령과 전면 투쟁을 하는 수밖에 없다. 김 대통령은 퇴임 후 망명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나는 아주 비장한 심경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이 중립을 표방하고 신한국당을 탈당해서 국민의 선택에 의해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면 김 대통령의 퇴임 이후 안정적인 생활을 내가 책임지고 보장하겠다. 그것만큼은 약속한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수십 번 소신을 밝혔다. 나라와 국민은 물론이고 민주적 정권교체가 안정적으로 이뤄지도록 김 대통령과 내가 서로 협력해야 하다. 그게 국민이 바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퇴임 후의 안전을 보장할 테니 중립을 지키라는, 일종의 협박이었다. 결코 굽히기 싫어하는 YS의 불 같은 성격을 고려해보면 DJ로선 일종의 승부수를 던진 거였다. 이쪽에서 공은 던졌는데 과연 YS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동원 전 장관이 그걸 알아보려고 김광일 특보와 다시 접촉했다. YS는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고 나중에 짧게 “알았다”고 대꾸했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무척 무거웠다는 게 김 특보의 전언이었다.

이건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알 수 없지만 DJ가 김광일을 만난 바로 그날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는 YS를 거세게 몰아세웠다. 강릉MBC가 주최한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이회창은 “여당의 92년 대선자금과 관련해 자료가 나온다면 DJ의 정치자금과 마찬가지로 사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로써 강삼재 총장의 폭로가 YS의 지시에 따른 게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여당 후보가 대통령을 공격한 셈이니 이제 YS와 이 후보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였다.

김 특보를 만난 다음날인 17일, DJ가 또다시 영수회담을 촉구했다. “경제가 곤두박질 치고 있다. 여당의 무책임하고 판을 깨려는 정치 때문이다. 경제 영수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 아무리 힘이 빠졌어도 현직 대통령인 이상 어떻게 해서든 YS를 중립화시켜야 한다는 게 DJ의 판단이었다.

그 며칠 사이 검찰 수뇌부도 요동치고 있었다. 10월 17일 김태정 검찰총장이 박주선 대검중수부 수사기획관과 만났다. 광주고 선후배인 두 사람은 검찰 내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 박주선은 몇 가지 이유를 들며 수사 불가를 주장했다. 첫째, DJ의 비자금 계좌 추적 자체가 실명제법 위반이어서 수사를 하려면 불법정보를 취득한 신한국당부터 문제 삼아야 한다. 둘째, DJ의 비자금을 수사하면 YS의 비자금도 건드려야 한다. 셋째, 검찰의 중립성이 의심받는다. 넷째, 호남에서 민란이 일어나 선거를 못할 수도 있다는 등이었다. 그래서 김 총장이 직접 YS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기로 두 사람은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만일 YS가 그래도 수사를 하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박주선은 “일단 YS에겐 알았다고 하고, 따로 기자회견을 열어서 DJ 비자금을 수사하려면 YS비자금도 수사해야 하니까 검찰의 공정성, 독립성, 중립성을 위해 수사를 할 수 없다고 발표해버리자”고 제안했다. 어찌 보면 일종의 항명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김 총장이 말했다. “좋다, 그렇게 하자.”

10월 19일 일요일 오전 10시30분, 김 총장이 비밀리에 청와대로 갔다. 김 총장의 보고를 받은 YS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 알았다. 검찰 생각이 맞다. 그렇게 해라.” 오후 8시, 김 총장은 자신의 집으로 박주선을 불러 저녁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김 총장은 DJ 비자금 수사 책임자인 박순용 중수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YS와 나눈 대화 내용을 알려주면서 이렇게 사정했다. “내가 고민이 많다. 수사를 하면 안 될 것 같으니 내 의견 좀 받아들여주라.”

그 다음날인 20일 대검찰청 8층 회의실에서 고검장 회의가 열렸다. 7명이 참석했다. 대부분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정호 광주고검장만 “광주 지역에서 민란이 일어날 분위기”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뒤였다. 김태정 검찰총장은 10월 2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신한국당의 DJ 비자금 의혹 고발 사건 수사를 15대 대선 이후로 유보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자들이 물어봤지만 청와대를 다녀온 사실은 비밀에 부쳤다. 검찰 결정에 화가 난 이회창 후보는 23일 YS에게 신한국당을 탈당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YS 사람이던 강삼재 총장은 “DJ 비자금 폭로는 이회창 후보가 시켜서 한 일”이라며 당직을 사퇴해버렸다. 정권 붕괴의 확실한 조짐인 집권당 내부의 분열이었다. YS는 10월 24일 영수회담을 수용하고 청와대에서 DJ를 만났다. 이회창 후보는 YS와의 만남을 거절했다. DJ의 집권은 이제 9부 능선까지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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