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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다윈의 정원’] 훌륭한 과학자는 엉덩이가 뚱뚱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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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면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2002년 11월 어느 날 나는 일본 교토대 부설 영장류연구소가 있는 이누야마라는 시골에 짐을 풀고 있었다. 세계적 침팬지 연구자인 마쓰자와 교수는 악수를 건네자마자 나를 이끌고 야외 사육장으로 향했다. 무표정한 침팬지 열네 마리가 나를 냉랭하게 맞는다. “저놈 이름은 ‘아키라’인데 1인자 수컷이고 ‘아유무’의 아빠죠. ‘아이’와 ‘아유무’는 모자 관계이고 ‘판’과 ‘팔’은 모녀간입니다. ‘클로에’는 등 쪽에 약간 푸르스름한 털이 있어요. 보세요….” 그의 시시콜콜한 소개말을 수첩에 받아 적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있었지만 난생처음 침팬지 무리 속에 와 있는 나로서는 누가 누구인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5일이 지난 오후 그 교수는 나를 다시 야외 사육장으로 끌고 갔다. 이름들을 맞혀 보란다. 큰일이다. 그놈이 그놈 같으니. 반타작의 굴욕에 국가적 자존심마저 구긴 것 같아 찝찝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게다가 그 교수의 표정은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거 봐. 영장류 연구는 그리 만만하지 않거든.’

 물론 그까짓 일로 좌절할 수는 없었다. 침팬지의 인지와 행동을 연구해 한국에 영장류연구소를 세워 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침 8시 시작되는 실험실 미팅과 9시부터 6시까지 계속되는 침팬지 인지 실험을 나는 즐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실험이 끝날 때마다 교수께 꼭 질문했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한 창의적 질문도 더러 있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는 동안 나는 우리가 매일 똑같은 실험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침팬지가 색깔이 다른 나무토막 두 개를 순서대로 쌓는 과제였는데, 가령 교수가 “빨강, 파랑”이라고 하면 빨간 토막을 먼저 놓고 그 위에 파란 토막을 얹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3주 내내 침팬지가 틀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보다 못한 나는 실험이 끝난 후 교수에게 제안했다. “두 개짜리는 완벽하니 이제 세 개짜리 과제를 줘 보면 어떨까요? 잘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장 선생, 참 운이 좋소. 지난 1년 동안 두 개짜리 실험을 해 오다가 바로 다음 주부터 세 개짜리 실험을 하려고 했거든, 하하” 이러며 껄껄 웃던 교수가 냉정하게 한마디 덧붙인다. “영장류 연구는 호기심만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지. 탄탄한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매일 똑같은 실험을 몇 년 동안이라도 꾹 참고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자료들은 거짓말을 안 합니다.”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의 호기심이 얼마나 값싼 것인지 느꼈기 때문이다. 정말 마쓰자와 교수는 거의 모든 일과를 침팬지와 씨름하며 보내는 진짜 영장류 학자였다. 그날 나는 과학도 누가 엉덩이를 더 오래 붙이고 있느냐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기심만 있다고 과학적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말을 그럴싸하게 한다고 해서 실험이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다. 실험실에서 매일매일 어렵사리 길들여지는 것이 바로 자연인 것이다.

 과학을 반짝이는 머리와 그럴싸한 입으로만 하다가 결국 큰 파문을 일으킨 유명한 과학자들이 더러 있다. 지난해 9월 하버드대 심리학과의 간판 교수이며 세계적 영장류 학자였던 마크 하우저가 여덟 건의 연구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대학 당국에 의해 밝혀졌다. 그중에서 원숭이의 행동에 관한 실험 자료를 자신의 이론에 유리하도록 조작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그의 부적절한 행위가 과거에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15년 전쯤 원숭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자기 자신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실험이었는데, 그것은 평생 비슷한 연구를 해온 전문가들이 동의하기 힘든 놀라운 결과였다. 하지만 관찰이 재연되지 않는다는 반론이 잇따르자 그는 몇 년 뒤 슬그머니 자신의 입장을 철회한다. 대체 왜 그가 이런 무리수들을 두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다만 그의 엉덩이는 머리와 입에 비해 가벼웠던 것은 분명하다. 두 달 전 하우저 교수는 끝내 하버드대 교수직을 사임하고 다른 일을 찾아 떠났다.

 얼마 전 우리 정부가 줄기세포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새로운 지식의 획득과 의학적 활용, 그리고 특허와 같은 산업적 측면에서도 이번 발표는 환영할 만하다. 이제 5년 전 온 국가를 패닉 상태로 빠뜨린 ‘황우석 사태’의 그늘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요즘 여러 매체를 통해 근황을 알리기 시작한다. “다시 한번 연구의 기회를 달라”고 한다. 지지자들은 이번에야말로 그가 컴백할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입과 머리만 앞서는 과학이 어떤 비극으로 끝날 수 있는지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훌륭한 과학자는 엉덩이가 뚱뚱하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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