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허풍’으로 일관된 자원외교 실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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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면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선 국민이 정부를 함부로 믿어선 큰코다칠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특히 대통령의 해외방문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자원외교 실적은 절대 믿어선 안 될 듯하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한 미국대사관의 2009년 2월 26일자 외교전문에 따르면 당시 한·이라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것으로 발표된 20억 배럴의 유전개발권 취득 등의 양해각서(MOU)가 실제로는 구체적인 합의내용 없이 ‘설익은 상태’에서 발표된 것이라고 한국외교관이 말한 것으로 돼 있다. 실제로 이라크는 불과 한 달 뒤에 한국 기업들을 유전 개발 입찰에서 배제한다고 발표했다.

 국민을 속이는 일은 이 정부에서만 있은 일이 아니다. 역시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주한 미국대사관의 외교전문에 따르면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정부는 주한미군 이전비용 부담액을 축소해 발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일부가 이전비용으로 전용된다는 한·미 간 합의내용을 한국 정부가 국회와 국민에게 감췄다는 것이다.

 또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이 29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003년 이후 현재까지 대통령과 총리, 특사가 외국을 방문해 체결한 광물자원 개발 양해각서(MOU) 35건 가운데 실제 계약으로 이어져 성공한 사례는 단 한 건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 정부가 공을 들여 추진하는 자원외교 역시 떠들썩하게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실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현 정부가 외국과 체결한 MOU 20건 가운데 9건은 실패, 10건은 결과를 알 수 없는 ‘진행 중’으로 나타났고 채광 성공 가능성이 있는 건 단 한 건이라고 한다. 대통령이나 총리, 특사의 해외순방 때 성과를 치장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내놓는 실적이 실제론 거의 전부가 ‘허풍’이라는 말이다.

 해외자원 개발과 관련한 MOU가 이처럼 대부분 ‘허풍’으로 귀결되는 건 우리나라의 공직자들이 위아래 할 것 없이 나라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안위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증거다.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과 총리급 인사는 자신이 나라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음을 국민에게 보여 주고 싶어한다. 여기에 해외순방이 악용되는 것이다. 그런 윗사람들을 대대로 모셔 본 아랫사람들은 항상 윗사람의 속내를 꿰뚫고 있다. 뒷일이야 어찌 되든 설익은 사업이 다된 것처럼 포장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것이다. 속된 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에 국민만 속는 꼴이다.

 계약으로서 법적 구속력이 없는 MOU라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변명을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부의 처신이 이처럼 가볍다면 국정(國政)은 어찌 되나. 카메룬의 다이아몬드광산 개발사업과 관련한 주가조작에 현 정부 실세 인물의 특사활동과 외교부가 개입돼 있다는 의혹마저 접하는 국민은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허풍은 범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