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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칸첸중가] 악전고투끝의 정상정복

중앙일보

입력

1988년 2월. 캐나다 캘거리에서는 제15회 겨울올림픽이 열리고 있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히말라야 8천m 고봉 14좌를 완등한 세계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이탈리아·1986년 완등)와 예지 쿠쿠츠카(폴란드·1987년)에게 올림픽 은메달을 수여하기로 결정했으나 이들이 수상을 거부했다.

당시 메스너와 쿠쿠츠카가 수상을 거절한 가장 큰 이유는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엄홍길대장은 18일 해발 8천3백20m에서 무산소로 비박 후 몸이 꽁꽁 언 상태에서 19일 새벽 악전고투끝에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그의 도전은 끊임없이 마주치는 한계상황을 극복해 가면서 자신의 의지를 확인해가는 일종의 신성한 의식같은 것이기도 하다.

고소생리학에서는 신체에서 일시에 산소를 제거하면 5분이내에 숨을 거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산소량은 5천m고도에서 평지의 절반, 8천m에서 약 30%밖에 안된다고 한다. 산소결핍상태에서는 호흡곤란·피로·무기력·두통·체온저하 등 신체에 여러가지 장애가 나타나며 심하면 폐속에 물이 잡히는 폐수종으로 목숨마저 잃게 된다.

산악인 박영석은 지난 1993년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등정했을 때 “천지가 온통 노란 빛으로 보이는 고통을 겪었다”고 전한다.

이렇듯 산소가 부족한 높은 곳에서는 행동하기도 벅찬데 그것도 섭씨 영하 20도를 밑도는 날씨속에서 쭈그리고 앉아 굶주림과 추위를 이겨내고 정상에 올랐다는 것은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등반은 무상(無償)의 행위’라고들 말한다. 목숨을 담보로 히말라야 8천m에 도전하는 산악인들의 등반행위를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에 대해 산악인 기도 레이는 “등산을 실천하는 속에는 어려운 산을 기어오르려는 단순한 야심과 달리 어떤 정신이 있다.나는 가장 아름다운 정열을 산에 바쳤고 그곳에서 이 세상에서는 받지못한 보수를 받았다.”고 설명한다.

금년 봄시즌 한국의 산악인들은 5개팀이 히말라야 고봉(초오유·마나슬루·에베레스트·마칼루·칸첸중가)에 도전했다. 어느 것 하나 값지지 않은 등정이 없겠지만 엄대장이 보여준 불굴의 정신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준다.

우리가 ‘작은 탱크’엄홍길을 철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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