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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닮은 인형 통해 한국사회와 대화하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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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아시안브릿지 사무국에서 톡투미의 이레샤 대표가 모니카인형의 분류작업을 하다가 딸 오아인(6)양과 함께 장난을 치고 있다. [황정옥 기자]

“요 까만 인형은 날 닮아 예쁘니까 최상품!”

지난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아시안브릿지 사무국. 스리랑카 출신인 페라라헬레세게 이레샤딜라니(37·여·경기도 안양시 만안구)가 아프리카 소녀를 연상시키는 헝겊인형을 잡으며 웃었다. 이주여성들과 한국인 봉사자들이 손바느질로 정성스레 만든 ‘모니카인형’이다. 수북이 쌓여있는 모니카들은 원피스, 잠옷에서부터 중국전통의상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개성을 뽐냈다. 특히 100여개 중 겨우 서넛인 까만색 인형은 피부가 까만 이주여성들이 자신들의 모습이라며 만들었단다.

KBS1-TV 프로그램 ‘러브 인 아시아’의 고정패널로 얼굴이 꽤 알려져 있는 이레샤는 이주여성들의 봉사모임인 ‘톡투미(Talk To Me)’ 대표다. 톡투미는 지난해 3월 스리랑카·태국·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이주여성 9명과 함께 만들었다. 회원들은 국제 비영리기구인 아시안브릿지와 협력해 다양한 나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모니카인형 판매사업은 그 중 하나다. 이날은 회원 4명과 한국인 봉사자 6명이 사무실에 모여 모니카인형 분류·포장 작업을 했다. 인형은 바느질 상태에 따라 1만5000원·2만원·3만원짜리로 나눈 뒤 바자회나 인터넷 카페(cafe.daum.net/TALKTOME) 등을 통해 팔고 있다. 수익금은 이주노동자 가정을 돕는데 쓴다. 올해 초부터 모은 인형 판매 수익금 80여만원은 25일 열린 이주민부부 5쌍의 합동결혼식 비용에 보탰다. 또 지난 어린이날에는 150여개 모니카인형을 이주노동자 가정 아이들의 선물로 기증했다.

이레샤 대표는 한국 생활이 어느새 10년째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버스를 타면 슬퍼요. 제 옆자리가 비어도 아무도 앉지 않거든요.” 그녀는 ‘한국 생활을 할 때 뭐가 불편하냐, 어떤 차별 받느냐’는 질문에 지쳤다고 했다. 대신 ‘대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대화를 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잖아요. ‘톡투미’는 ‘대화하자’는 의미에요. 봉사를 하며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톡투미를 만들었어요.”

그녀는 의상디자이너로 일하며 스리랑카와 한국을 오가다 현재의 남편을 만났다. 2003년 결혼해 지금은 1남 1녀의 엄마다. 2009년 귀화했다. 한국에는 버려지는 물건이 많은 게 늘 안타까웠던 그녀는 지난해 말 못쓰는 헝겊과 단추를 모아 인형을 만들어봤다. “인형 이름을 며칠 동안 고민하다 이주여성들이 ‘먼 곳에서 왔으니까, 머니까’라는 뜻으로 모니카라고 지었어요. 사람들이 우리한텐 마음을 쉽게 못 열지만, 귀여운 인형은 누구나 좋아하니까 한국사람들과 소통하는 통로로 이용해보자고 생각했죠.”

톡투미 회원들은 지난해 12월 한국인 자원봉사자 15여명을, 지난 7월에는 2기 봉사자 10명을 모집했다. 격주로 토요일마다 이주여성들이 선생님이 돼 함께 모니카인형을 만들었다. 25년전부터 인도네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다는 1기 봉사단 박정희(60·여·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씨는 “인도네시아에선 나도 외국사람이라 한국에 사는 이주여성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동안 모니카인형을 30여개 만들었다는 박씨는 “손녀들 선물하라고 친구들한테 강매해요”라며 웃었다.


모니카인형 만들기는 올해 5월 서울시자원봉사센터 자원봉사프로그램 공모에도 선정됐다. 2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5월부터 이주여성 두세 명이 돌아가며 은광여고·대명중·압구정중학교와 하나금융그룹을 방문해 모니카인형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다. 태국 출신의 톡투미 운영위원 우싸운댕(38·여·서울시 구로구 오류1동)은 “같이 인형을 만들면서 웃고 떠드니까 제가 동네 아줌마 같대요”라고 말했다.

톡투미는 모니카인형 판매 말고도 다양한 나눔 활동을 한다. 지난해 3월부터 5개월간 송파노인요양센터에서 치매노인의 식사를 도왔고, 연말에는 직접 김치를 담가 장애인이 있는 다문화가정에 전달했다.

이레샤 대표는 “모니카에는 다양성이 담겨있어요. 지금은 하얀색 모니카가 대부분인데 앞으로는 하얀색·갈색·까만색, 세 가지 색으로 만들 생각이에요. 다양한 색의 모니카가 한데 모여있듯 한국 사회도 다양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글=윤새별 행복동행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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