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0억어치 은괴 실은 보물선 4700m 대서양 심해서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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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200t의 은괴를 실은 채 대서양에 침몰했던 영국 ‘보물선’이 최근 발견됐다. 아일랜드에서 서남쪽으로 약 480㎞ 떨어진 대서양 해저에서다. 이 은괴의 시가는 약 1억5000만 파운드(약 2750억원)에 이른다. 해저에서 찾아낸 귀금속 규모로는 사상 최고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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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플로리다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해저수색 전문업체 ‘오디세이 마린 탐사(Odyssey Marine Exploration)’는 26일(현지시간) 은괴를 수송하던 영국 화물선 게르서파(SS Gairsoppa) 호의 위치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배의 현재 모습을 담은 동영상도 공개했다. 인양작업은 내년 봄에 시작될 예정이다. SS는 증기선(Steam Ship)을 의미하는 약어고, 게르서파는 인도의 폭포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배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2월 17일 독일 잠수함(U-보트)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게르서파는 당시 인도에서 은괴·은화와 차(茶) 등을 싣고 아일랜드로 향하고 있었다. 애초 영국 리버풀항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기상 악화로 항해 기간이 길어져 연료가 부족해지자 일단 아일랜드로 방향을 틀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이 배는 어뢰 한 방으로 구멍이 뚫려 그대로 침몰했다. 선원 85명 가운데 32명이 구명보트를 타고 육지로 향했다. 13일 뒤 구명보트는 아일랜드 해안에 당도했지만 그동안 탈수 현상으로 하나 둘씩 숨져 생존자는 리처드 에이레스 이등 항해사 한 명뿐이었다.

 영국 정부는 그동안 몇 차례 전문가를 고용해 이 배를 찾아내려 했지만 실패하자 지난해 오디세이 마린 탐사에 독점적 수색 권한을 내줬다. 오디세이 마린 탐사와 영국 정부가 8:2로 화물 판매대금을 나누는 조건이었다. 거액의 추적 비용을 들이고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체 쪽의 지분이 많게 계약됐다. BBC에 따르면 이 배에 실려 있던 은괴의 상당 부분은 민간 소유였으나 영국 정부가 선박 침몰 뒤 이를 물어주고 모든 화물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했다.

  오디세이 마린 탐사는 첨단 원격조종 잠수정을 동원해 해저수색을 벌인 지 두 달도 채 안 돼 배를 찾아냈다. 이 회사는 “배가 뒤집어지지 않고 그대로 가라앉아 인양작업이 비교적 수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배는 타이타닉호 발견 위치보다 약 700m가 낮은 해저 4700m의 심해에 있다. 은괴 인양이 이뤄지면 보물 탐사 사상 가장 깊은 곳에서 건진 기록을 세우게 된다.

 오디세이 마린 탐사는 그동안 여러 차례 해저 보물선을 찾아냈다. 2007년에는 대서양에서 약 50만 개의 금화를 싣고 1804년에 침몰한 스페인 보물선을 발견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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