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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수율 82% … ‘온누리상품권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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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정선언
경제부문 기자

삼성그룹 계열사에 근무하는 김모(30)씨는 지난 추석 고향 대구에 갔다가 부모님께 온누리상품권 20만원어치를 드렸다. 회사에서 지급한 재래시장 상품권이었다. 김씨는 “집 근처에 마땅히 쓸 만한 곳이 없었다. 인터넷에 할인판매 글을 올린 동료들도 몇몇 있지만 팔았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부모님께 줬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현대차 울산공장이 28억원어치를 구매하는 등 대기업이 온누리상품권을 사들여 직원들에게 나눠주던 이달 초, 일각에선 인지도가 낮아 실제로 사용되겠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장롱 안에서 잠자거나 ‘상품권깡’ 시장으로 흘러들어 검은 거래를 키울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이 중소기업청에 의뢰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온누리상품권이 도입된 2009년 7월부터 지난달까지의 회수율은 82.4%. 팔려나간 상품권 10장 중 8장이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현금으로 지급된 것이다.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이 전국 온누리상품권 가맹점포 800곳을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점포의 추석 기간 평균 매출은 전년 대비 10.7% 늘었고, 온누리상품권을 통한 매출은 54.5% 증가했다. 재래시장을 찾은 10명 중 1명(10.6%)은 온누리상품권으로 물건을 산 것으로 나타났다.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예상이 빗나간 이유는 뭘까.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인지도의 역설 때문”이라고 말했다. 깡시장을 움직이는 업자들이 상품권을 사들이는 건 되팔 수 있는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지도가 낮은 온누리상품권은 가격이 싸다고 해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 현금이 급한 법인이나 사람들 역시 백화점상품권·구두상품권을 사지 온누리상품권을 사지는 않았던 것이다. 낮은 인지도, 바로 그것 때문에 온누리상품권은 실효를 발휘한 셈이다.

 재미있는 현상은 또 있다. 사기는 서울에서 사는데 쓰기는 지방에서 쓰는 것이다. 박 의원 조사에 따르면 온누리상품권의 서울 지역 회수율은 44.2%에 그친 반면 제주는 116.6%, 부산은 102.6%로 나타났다. 충남과 충북도 100.9%, 100.1%였다. 이들 지역에서 팔려나간 상품권보다 회수된 상품권이 더 많다는 의미다. 이처럼 시장 상인들을 위한 또 다른 인지도의 역설 효과가 있는지 고민해볼 때다.

정선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