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늘을 멋스럽게 살려낸 맛,이브를 유혹하는 파이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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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호 03면

경기가 좋지 않아 사람들이 차를 안 타고 걸어 다녀서 신발이 빨리 해진 탓일까. 신발업계는 불경기라는 말을 모른 채 계속 성장하고 있다. 조직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이탈리아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2%(수량은 9.7%) 성장한 30억 유로어치 약 1억 800만 켤레의 신발을 전 세계에 수출했다. 특히 가방 및 피혁 제품의 매출은 무려 28%(약 16억 유로)나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탈리아 구두,가방 전시회 MICAM과 MIPEL을 가다

자료가 말해주는 수치가 거짓이 아님은 전시장 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바이어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고 부스들도 거래 상담자들로 가득했다. 바이어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고집하는 회사보다 유행에 맞는 신상품을 신속히 개발하는 회사들에 더 많이 몰렸다. 불법복제의 염려 때문인지 유명 회사들은 밖에서 신제품을 볼 수 없도록 디스플레이를 했고 약속을 잡아야만 부스에 들어가 제품을 볼 수 있었다. 즉 아이쇼핑 식의 제품 구경이 불가능한 것이다. 바이어들은 이런 전시가 익숙한지 상담 약속을 미리 받거나 방문 시간을 조정하기도 했다.

이번에 100회를 맞이한 미펠 전시 측은 특별 행사들을 마련했다. 전시장 곳곳에는 가방과 액세서리로 장식된 대형 생일케이크가 놓여 있었고 하루에 두 번씩 가방 패션쇼를 여는가 하면 전시장 한 중앙에 지난 50년간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사진들을 전시하고 저녁마다 칵테일 파티를 열었다. 패션쇼에는 초대장이 없어도 아무나 들어가서 볼 수 있었다. 가방의 종류에 따라 캐주얼하게, 혹은 엘레강스하게 옷을 입은 모델들이 가방을 들고 메고 나왔다. 한 가방이 여러 색상의 의상에 잘 매치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델들이 가방을 바꿔 들기도 했다. 한 모델이 자신이 들고 나온 가방을 무대 끝에 놓고 들어가면 다음 번 모델이 무대 끝까지 걸어나와 자신이 들고 나온 가방을 바닥에 놓고 전 모델이 놓고 간 가방을 들고 들어갔다. 모델들의 몸매나 얼굴이 아닌, 무대에 홀로 남은 가방에 모든 시선이 집중하도록 한 아이디어였다.

2012년 봄·여름의 가방·구두 트렌드는 뭐니 뭐니 해도 파이톤(뱀가죽) 소재다. 구약 성서의 천지창조 이후 유혹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뱀은 죽어서도 가죽을 남겨 유혹을 멈추지 않는다. 파이톤의 자연적 색상과 비늘을 그대로 살려 제작한 제품은 물론 파랑·노랑·빨강 등으로 물들여 다양함을 준 것들도 있다. 소가죽 가방의 모서리 부분이나 아우트라인에만 파이톤을 사용한 것도 있고 조각조각 이어붙인 모자이크식 가방도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유행을 따라가는 실속파 소비자를 위해 가짜 파이톤이나 프린트된 면, 혹은 비닐을 사용한 제품도 많았다. 파이톤 소재의 남녀 가방·지갑·벨트·구두 등은 이미 프랑스나 이탈리아·미국의 유명 패션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올해 가을·겨울의 패션 트렌드로 시작되었는데 이 열기는 내년 여름을 더 뜨겁게 만들 것 같다.

부드러움·매끄러움·자연스러움은 내년 여름의 패션 문구다. 모든 애플리케이션은 확실히 보이는 곳에 붙어있고 사이즈도 매우 크다. 술 장식(fringes)과 메탈 지퍼의 장식적 사용도 현저하게 보인다. 아주 작거나 매우 크게 프린트된 모든 사이즈의 꽃 무늬, 주황, 노랑, 레몬 옐로, 밝은 녹색 등 눈에 확 띄는 색상은 시각적 시원함을 준다.

가방의 형태는 쇼핑백 스타일의 클래식한 모양이 주를 이룰 예정이다. 즉 새로운 형태는 없지만 누가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품목이다. 일상 생활에 사용되는 가방 사이즈는 중간 사이즈의 실용적인 핸드백들이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장식이 달린 작은 지갑을 하나, 혹은 두세 개씩 가방에 다는 것이나 금속 지퍼를 사용해 여러 층의 포켓을 다는 것도 계속되는 가방 트렌드다.

스와롭스키 등 크리스털 보석장식 애플리케이션도 인기인데 꽃무늬, 글씨는 물론 해골 프린트에 보석이 박힌 것도 심심찮게 보였다. 전체를 보석으로 가득 박은 파티용 핸드백들은 여전히 초소형으로 제작되고 있다. 남성용, 혹은 사무용 가방 분야에서는 아이패드 등 태블릿 케이스와 가방 제조가 늘고 있다.

여성들의 구두는 점점 굽이 높아지거나 아예 굽이 없는 발레리나 슈즈가 대부분이다. 화려한 끈이나 매듭으로 발등을 덮어 발목까지 올라오게 만든 신발은 지난해, 올해에 이어 당분간 장수할 것 같다. 발등을 과감한 무늬와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하이힐 슈즈는 여성의 로망으로 자리잡기에 손색이 없다.

남성 운동화나 신사화의 끈은 채도가 높은 화려한 색상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뒤꿈치가 둥근 에너제틱 워킹 운동화도 헬스케어 제품으로 현재 인기가 대단하다. 오리지널 신발은 걷는 모습이 들썩거리며 에너지를 대량 소비하게 하는 대신 타 회사 제품들은 걷는 폼이 구겨지지 않을 정도로만 둥글다.

유행과는 전혀 상관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 기능성 제품도 많이 나왔다. 스페인의 ‘모스토’라는 회사는 높게, 혹은 낮게 사용할 수 있는 구두굽을 개발했다.

소비자가 직접 자석이 삽입된 굽의 중앙을 분리해 높은 굽이나 낮은 굽을 끼워 넣어 한 구두를 단화로, 혹은 하이힐 구두로 신을 수 있다. 이탈리아의 우르바니캅 회사에서 제작한 가방은 외투의 안쪽에 털을 달고 떼듯 가방의 여러 부분을 달거나 떼어낼 수 있게 해 한 가방으로 네 가지 디자인을 연출해낼 수 있게 했다.

독일 돌핀사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지갑을 선보였다. 이 지갑을 사용하면 공항 X선 검사나 무선랜, 휴대전화의 전자파에도 카드가 손상되지 않는다. 이들의 다음 번 신제품은 디지털 여권 보호용 알루미늄 여권 케이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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