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국내 보험사 경쟁력은 ‘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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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헌수
아태보험학회(APRIA) 회장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서구 선진국이 내리막길이다. 경제 활력이 떨어져 제조업 주도권을 신흥 부흥국에 넘긴 지 오래이고 아직도 경제위기에서 회복 못하고 있다. 아시아가 세계경제의 중심이 되면서 구미가 ‘주변부’로 전락했다는 주장까지 있다. 하지만 부가가치 높은 보험산업을 보면 얘기는 전혀 다르다. 재보험 등 세계 보험시장에서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도 서구의 벽을 전혀 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보험산업은 규모로 세계 7, 8위라고는 하지만 국제경쟁력으로 보면 한참 떨어진다. 보험사 국제경쟁력을 나타내는 간단한 지표는 총보험료에서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보험료의 비중이다. 국내 손해보험 선두기업이 1~2% 정도지만 대표적인 선진 보험사는 80% 정도다. 사실 후발국으로서 보험산업을 국제화·세계화하기란 쉽지 않다. 제조업체와는 달리 기술 역량이 암묵지(暗默知)로 구성되어 전수되기 어렵고, 사업 승패가 사회·문화 및 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영국의 금융 빅뱅을 시작으로 구미 금융산업은 자유화·겸업화·통합화가 경쟁적으로 급격히 진전되었다. 보험산업도 국경을 넘어 경쟁과 협력의 합종연횡을 하면서 대형 보험사의 글로벌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글로벌 보험사에 대한 글로벌 규제는 미약했다. 이런 규제 공백으로 야기된 AIG 자회사의 부실 신용파생상품은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만다.

 보험산업에 비해 은행산업은 글로벌화가 빨랐다. 따라서 이에 대응하는 글로벌 건전성 규제도 빨랐다. 이에 비해 보험은 미국과 유럽이 서로 다른 건전성 규제안을 유지하면서 통일된 건전성 규제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세계표준 건전성 규제가 없었던 보험산업도 2007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세계보험감독자협의회(IAIS)를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통일된 건전성 규제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였다.

 특히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거대 금융기관(SIFI)에 대한 규제를 합의함에 따라 거대 보험사에 대한 규제안도 조만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이 안은 세계경제에 영향을 주는 거대 보험사에만 적용된다. 하지만 바젤협약의 예처럼 결국에는 이 안이 각국의 건전성 규제의 기본이 될 것이다. 이런 글로벌 보험산업 규제를 논하는 IAIS 총회가 9월 말 한국에서 개최된다. 이번 IAIS 총회는 G20 서울정상회의가 우리나라를 세계정치의 중심으로 바꿨듯 한국 보험산업이 세계 보험산업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는 호기다.

 세계 중심이 될 아시아 시장은 구미의 보험사보다 우리 보험사가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우위에 있다. 다가오는 ‘아시아 시대’에 세계 보험시장은 우리의 블루오션이며 놓쳐서는 안 되는 기회다. 세계 보험시장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 세계표준규제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우리 스스로도 세계표준 규제를 국내에서 시행해야 한다. 10년 전 어느 누가 K팝이 전 세계 청소년을 매혹시킬 것이라 상상했었나. 10년 후 한국 보험산업이 세계보험산업의 한 축이 되는 것은 막연한 꿈이 아니다. 한국이 세계 중심이 되는 것, 우리의 땀으로 움켜질 수 있는 비전이자 목표이다. 한국 보험, 이제 세계 중심으로 전진할 때다.

김헌수 아태보험학회(APRIA) 회장,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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