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영화제작 동아리 ‘개봉박두’…내일의 미디어인재 꿈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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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영화제작 동아리 학생들이 천안시 영상미디어센터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제작이 좋아 모인 초보자들

천안 지역 고등학생들이 영화 제작에 나섰다. 가진 건 DSLR카메라와 캠코더 한 대. 열악한 장비와 부족한 시간, 걸음마 수준의 지식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그들의 열정은 남달랐다.

 17일 오후 수업을 마친 학생 10명이 각기 다른 교복을 입은 채로 천안YMCA 회의실에 모였다. 영화가 좋아 모인 청소년 영화제작 동아리 ‘개봉박두’ 회원들이다. 영화 제작을 접한 지 5개월도 안된 초보들이지만 회의하는 분위기는 여느 제작사 스태프 못지 않다.

 얼마 전 영상물로 제작한 ‘고교평준화를 위한 천안시민학생 걷기대회’를 놓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회장인 한아름(17)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영상물에 내레이션을 입히지 않고 중간에 인터뷰만 들어가니 분위기는 잘 전달 되는데 왠지 허전해 보이고 대체적으로 조잡한 느낌이 듭니다.” 이기운(17)군은 다른 시각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게도 보이지만 이번 제작물이 의미 전달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영상물을 보고 각자 의미를 생각해 보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6월11일 천안역 서부광장에서 천안YMCA와 천안고교평준화시민연대가 주최한 ‘천안시 고교평준화 실현과 학생 인권 조례 제정 촉구를 위한 천안시민학생 걷기대회’에서 상영된 영상물을 개봉박두가 만들었다.

 ‘후배들이 학업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인터뷰한 남학생, ‘고교평준화’ 손팻말을 들고 나온 여학생, 중학교 1학년 딸의 손을 잡고 참가한 학부모, 풍물·오카리나·중창·밴드·댄스 공연, 소망끈 매기 퍼포먼스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열정·꿈 담은 작품은 나만의 스펙

개봉박두 회원들은 1년 전부터 활동한 선배들과 4편의 UCC를 제작했다. 이들에게 동아리는 공부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창구이자 미래 꿈을 이루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기운(17)군은 1년 동안 동아리 활동에 열정을 쏟았다. 촬영·편집 부문에서 이군의 실력을 따라올 회원은 없다. 동아리에 들어오기 전만해도 그는 촬영과 편집에 대해 전혀 몰랐다. 촬영·편집기술 관련 서적을 3권 이상 읽으며 혼자 공부했다.

 인터넷에서 촬영장비 다루는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알 수 없는 내용은 대학생이 된 동아리 선배에게 전화해 물어보며 하나씩 알아갔다.

 하지만 촬영·편집기술을 배우는 것만으로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장소와 출연진 섭외도 문제였다. 학생들이 영화를 찍는다고 하니 어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수퍼마켓이 배경인 장면을 찍기 위해 버스를 타고 지역 대형마트를 찾아 돌아다녔다.

 평일에는 학교수업을 받아야 하는 학생이기에 주말에만 촬영이 가능했다. 열정은 있었지만 시간이 문제였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내지 못했다. 가는 곳마다 거절 당했다. 다행히 마지막으로 간 곳에서 승낙을 받아 촬영 할 수 있었다.

 이군은 “장소 협조를 구할 때 학생들이 한다고 하면 못 미더워 하는 분들이 많다”며 “조금만 따뜻한 시각에서 우리를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개봉박두가 올해 창립 11년째를 맞았다. 학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올해 4월 신입 회원을 모집할 때 천안 지역 고등학생 50여 명이 몰렸다. 면접을 통해 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7명이 들어왔다.

 방송 예능 프로듀서가 꿈인 이완호(17)군, 배우를 꿈꾸는 한상현(17)군, 방송인이 목표인 이도연(16)양 등 미래의 미디어 인재를 꿈꾸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한아름양은 “천안 지역 학생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줬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회원들과 즐겁게 활동하며 미래 꿈을 이뤄가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여준다

개봉박두 회원들은 현재 ‘새터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구상 중이다. 올 초 전국 청소년 YMCA 동아리 회의에서 나온 주제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이기운군이 새터민을 주제로 영상을 만들자고 회원들에게 제안했다.

 회원들은 새터민에 대한 심도 깊은 조사를 시작했다. 새터민 관련 영상, 신문 기사 등 많은 자료를 검색했다. 조사하던 중 천안에 ‘새터민 학교’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회원들은 점점 진지해졌다. 새터민이라는 주제가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회원들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혹시나 자신들의 활동이 새터민들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회원들은 새터민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새터민의 실생활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군은 “북한이 싫어 내려온 사람들인데 우리 나라 사람들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슴 아팠다”며 “앞으로 개봉박두는 사회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고등학생만이, 고등학생이기에 만들 수 있는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사진=강태우 기자, 조한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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