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청소·급식당번·시험감독 … 직장맘 속타고, 전업맘은 속터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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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이모(35·서울 노원구)씨는 올 4월 학교에서 보내온 알림장에서 ‘엄마 청소당번일’을 확인했다. 학부모 서너 명이 조를 짜 교실 대청소를 해주는 일이었다. 직장에 다니는 데다 둘째를 임신한 이씨는 “상담도 평일에 하고 한 달마다 돌아오는 청소도 평일에 하도록 돼 있었다”며 “매번 연차를 낼 수도 없는데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아이가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엄마들이 쪼그려 앉아 왁스 청소까지 하는데, 저학년생들이 청소를 할 수 없다면 용역을 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부산에 사는 김모(41)씨는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등굣길 교통봉사와 급식도우미, 시험감독 활동을 한다. 김씨는 “표면적으로는 자율봉사지만 학부모회 결정으로 마지못해 참여하는 엄마가 많다”며 “급식도우미 인원이 반별로 할당돼 있어 못 갈 때는 벌금을 내거나 유료 도우미를 구해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전국 초·중·고교에서 학부모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비자발적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맞벌이 가정은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교사 눈 밖에 날까 봐 걱정하고 있다. 전업주부들도 ‘울며 겨자 먹기’식 동원이 많다고 불만이다.

 18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배은희(한나라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와 16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학부모 참여활동 현황 자료에도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 학부모들이 학교행사 도우미, 시험 감독, 청소, 급식 배식, 환경 미화 등 다양한 일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생 학부모들은 학교 행사 도우미, 시험 감독, 청소, 급식 배식 순으로 활동 빈도가 높았다.

 학교와 교육청은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해 참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배 의원의 요청으로 교과부가 학부모 교육정책 모니터단 500명을 조사한 결과 마지못해 참여하거나 문제점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의 한 초등생 엄마는 “ 학기 초 자발적으로 신청하는 엄마들도 있지만 학부모회가 요청해 어쩔 수 없이 가는 경우도 많다” 고 지적했다. 광주의 모니터단은 “교통봉사도 구청 교통과에서 의무적으로 학부모 참여를 요구하고 학급별로 인원이 할당된다”고 했다.

 특히 맞벌이 엄마들은 불안해한다. 초등 2학년 자녀를 둔 임모(39·서울 송파구)씨는 “직장 때문에 아이를 방치하는 것 같아 초조하다”며 “차라리 ‘학부모 학교 출입금지’를 시키면 발 뻗고 잘 것 같다”고 말했다. 전업주부들은 오히려 단순 봉사 ‘봉’이 되고 있다고 불만이다. 한 학부모는 “학기 초 전업주부라고 밝히면 계속 요청이 온다”며 “아이가 임원을 맡거나 학부모회 임원이라도 되면 사실상 수도 없이 동원된다”고 말했다. 배은희 의원은 “학교가 봉사를 과도하게 주문하면 맞벌이나 한부모 가정 아이들은 소외될 우려가 있다”며 “비자발적인 학부모 동원이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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