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한 번으로 명품의 우아한 매력을 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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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호 22면

구찌가 온라인 판매 독점상품으로 선보인 소형 숄더백. 오프라인 매장과 똑같은 박스 포장을 재생종이박스로 한 번 더 포장해 배송한다. 배송 과정에서 브랜드 로고가 노출돼 발생할 수 있는 도난 우려를 줄이기 위해서다. 최정동 기자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드라마 인기 덕에 한참 유행했던 이 말은 명품의 특성을 가장 명료하게 대변한다. 역사와 전통, 장인의 수작업 등 변치 않는 것에 대한 고집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명품의 가치다. 이런 아날로그적 특성 때문에 명품 브랜드들은 시대의 변화에 비교적 초연했다. 때로는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온라인 부티크 여는 명품 브랜드들

인터넷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 이후 웹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열렸을 때 명품 브랜드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2005년 펜디의 홈페이지는 ‘곧 돌아오겠다(coming soon)’는 안내문만 남겨진 휴업 상태였고, 프라다 역시 도메인 주소만 보유한 채 웹사이트를 방치했다. 프라다가 본격적으로 웹사이트 운영을 시작한 것은 2007년이나 돼서였다. “신상품을 인터넷으로 보고 싶다”는 소비자들의 원성에도 이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우리는 고객들이 직접 매장을 방문해 제품을 만지고 느껴 보기를 원한다.”

하물며 쇼핑은 말할 것도 없다. 소매업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진화하고 서점 대신 인터넷에서,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구매하는 세상이 왔지만 명품만은 예외였다. 명품이 추구하는 가치와 온라인의 특성은 판매영역에서 더 크게 충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구찌(위)와 버버리의 온라인 스토어 캡처 사진. 자세한 제품 설명과 줌(zoom) 기능을 갖춰 직접 보지 않고도 쇼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른바 ‘명품’을 소비하는 행위는 특별하다. 값을 지불하고 제품을 손에 넣지만 소비자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제품 자체라기보다 이미지다. 명품 쇼핑의 비용 안에는 매장의 고급스럽고 안락한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 정중한 서비스를 받는 게 포함되는 것이다. ‘패션계의 아마존닷컴’으로 불리는 명품 온라인쇼핑몰 네타포르테(www.net-a-porter.com)의 설립자 나탈리 마스네는 이렇게 말했다. “명품이 지닌 마법 같은 매력을 유지해야 한다. 만약 제품을 한갓 의류로 전락시킨다면 그 옷은 명품으로서 매력을 잃고 일반 의류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통상적인 온라인 쇼핑은 품위·고급·정중함과는 거리가 멀다. 각종 배너가 모니터를 가득 채우고, 번쩍거리는 숫자가 노골적으로 가격을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가격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고 강조하며 예술작품 같은 화보로 이미지 광고에 집중해 온 명품 브랜드가 어울릴 수 없는 환경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값비싼 명품을 보지도 않고 구매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가세하고,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고객층으로 떠오르면서 온라인은 명품업체도 피해 갈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브랜드들은 2~3년 전부터 가방·신발·의류 등 모든 제품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과 다름없는 온라인 부티크를 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명품 브랜드의 온라인 매장에서는 편리와 명품의 우아한 매력을 함께 누릴 수 있을까.

유럽·미국 시장에서 먼저 시작한 명품 브랜드의 온라인 매장은 올 들어 국내에도 선보였다. 이를 통해 과연 브랜드들이 고민한 ‘품격 있는 온라인 쇼핑’은 가능한 것인지 들여다봤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서비스를 시작한 곳은 구찌다. 올해 2월 디지털 스토어(www.gucci.com)를 열었다. 한글 서비스를 제공하고, 달러 대신 원으로 결제하고, 물류·배송·애프터서비스(AS)까지 구찌코리아가 책임지는 완전하게 현지화한 온라인 매장이다. 의상을 제외한 핸드백, 남녀 신발, 가죽 소품, 액세서리, 시계 등 1000여 개의 아이템을 판매 중이다. 오프라인 매장과의 차별화를 위해 온라인에서만 살 수 있는 제품(website exclusives)도 갖췄다.

버버리(www.burberry.com)의 온라인 스토어는 구찌와 달리 한국어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제품 가격은 오프라인 매장과 동일하게 적용되도록 원화로 표시돼 있다. 대신 전 세계에서 동일하게 운영되는 매장이기 때문에 국내 오프라인 매장에 수입되지 않은 제품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영국 본사에서 직접 주문·배송을 관리하는데, 멀리서 오는데도 배송료는 없고 관세 역시 버버리 측이 부담한다.

페라가모(www.ferragamo.com)도 올 6월 온라인 스토어를 열었다. 2009년 유럽과 미국에서 먼저 시작했고,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최초의 온라인 매장 운영 국가가 됐다. 구찌와 마찬가지로 한글 서비스를 제공해 편리한 쇼핑이 가능하다.

이처럼 명품 브랜드가 직접 온라인 매장 운영에 뛰어들기 전에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명품을 살 수는 있었다. ‘네타포르테’ ‘블루플라이(www.bluefly.com)’ 등이 명품 업체가 온라인 진출을 망설이는 사이 시장을 개척해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유럽·미국으로 배송 지역이 제한되거나 상당한 배송료와 관세를 부담해야 하는 등 국내 소비자들에겐 구매 장벽이 높았다. 병행 수입이 허용되면서 국내 쇼핑몰 사이트나 TV 홈쇼핑이 낮은 가격을 무기로 고객을 모으기도 했지만 ‘짝퉁’에 대한 불안감이 뒤따랐다. 이런 점에 비췄을 때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는 온라인 스토어의 서비스는 강점이 있다.

구매 여부와 관계없이 마음껏 제품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구경꾼인지, 구매자인지 살펴보는 듯한 매장 직원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넓은 매장에서 원하는 제품을 한눈에 볼 수 없는 오프라인 쇼핑의 단점도 해결한다. 고가의 명품을 직접 보지 않고 사야 하는 부담도 덜었다. 구찌의 경우 모든 아이템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사진을 제공했다. 또 각 사진은 돋보기를 들이댄 듯 확대해 볼 수 있어 세부 장식도 꼼꼼하게 살필 수 있게 했다. 올 초 국내에 론칭한 키즈라인의 경우 어린이 모델 사진을 올려 제품의 디자인이나 사이즈를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도 있다.

오프라인 쇼핑과 다름없는 이런 편의는 남성 고객들에게 더 큰 반응을 얻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 쇼핑객의 절대 다수가 여성인 데 반해 디지털 스토어 고객의 절반은 남성이다. 북적이는 게 싫거나 시간에 쫓겨 매장을 찾지 않았지만 패션에 대한 관심이 큰 남성들이 디지털 스토어에서 쾌적한 쇼핑을 즐긴다는 뜻이다. 실제 구찌가 디지털 스토어를 열면서 시작한 OS(online shopping associate·온라인 퍼스널 소퍼) 서비스를 요청하는 고객의 상당수는 남성이다. 구찌 측은 “자신의 직업과 평소 옷차림, 취향을 설명하고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추천해 달라며 적극적으로 문의하는 고객이 늘었다”고 전했다.

마음이 변했을 땐 반품도 가능하다. 구찌의 경우 온라인 스토어의 반품 탭(tab)을 클릭하면 바로 제품을 돌려보낼 수 있다. 영국 본사가 운영하는 버버리도 전화고객센터 서비스는 한국어로 제공해 반품 등 상담을 용이하게 했다.

가장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부분에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3차원으로 경험하는 브랜드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2차원 모니터 속에 구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구찌나 페라가모처럼 현지 언어를 사용하는 웹사이트라 하더라도 디자인과 형식은 본사에서 철저하게 관리한다. 구찌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프리다 지아니니가 직접 나서 매장의 건축양식, 실내 디자인, 분위기 등이 가상공간에서도 전해지도록 했다

풍성한 콘텐트 역시 품격 있는 온라인 쇼핑을 돕는다. 뉴욕·런던·파리·밀라노에서 내년 봄·여름 컬렉션이 한창인 이맘때엔 패션쇼 동영상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브랜드의 새 소식도 바로 전한다. 동영상과 사진을 활용해 브랜드의 전통과 가치, 제품에 얽힌 이야기 등을 소개한다. 고객들에게 공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역사와 전통, 장인정신 등 브랜드가 강조하는 가치가 전달되도록 한 것이다. SNS와의 연동도 빠지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페이스북·트위터 등을 통해 쇼핑에 대한 지인들의 의견을 묻거나 취향을 공유함으로써 브랜드 저변을 확장하는 것이다.

최근 이탈리아의 명품 관련 기업협회 알타감마(Altagamma)는 2015년까지 명품 브랜드의 온라인 매출이 매년 20%씩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특히 “SNS의 폭발적 성장에 따른 명품에 대한 정보 교류가 소비자의 구매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파이낸셜 타임스는 명품의 온라인 판매와 관련해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 ‘브랜드를 망칠 것인가, 더 많은 추종자를 낳을 것인가?(Tarnish the brand or build an aspirational following?)’ 불과 1년 사이 그 답은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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