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에 '접적지역' 땅값 기지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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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은 사회 각 분야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동안 접적 지역으로 지목돼 온 파주·문산·연천·의정부·철원 일대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녹지대가 땅값 상승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 군사보호지역 및 민간통제선 지역들이다.

파주시는 2016년까지 인구 40만명을 수용하는 전원형 신도시로 개발할 청사진을 마련해 놓고 있다. 통일시대를 대비해 파주를 남북 5개 축과 동서 4개 축 도로망을 새로 건설하고, 지하철 연장선도 탄현까지 잇는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파주 일대 도시계획 구역으로 돼 있는 지역은 1천6백50만평에서 1억6백38만평으로 10배나 확대되고, 이 가운데 남쪽 준농림지 1천5백45만평은 개발용지로 편입된다. 임진강 북쪽 지역과 동부 산악지역을 뺀 대부분의 땅이 도시계획구역에 포함되는 것.

한편 교하 택지개발 지구를 포함한 미니신도시 2백만평은 용적률을 80%로 제한해 전원형 주거단지로 만든다. 이같은 용적률은 분당·일산의 절반 수준으로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

포천·연천군은 공장, 가든용지가 인기인데 개발시·군 등의 동의가 필요하다. 2차선 도로변의 전답이 평당 10만~12만원선, 임야는 4만~5만원선.

강원도 철원지역은 구 철원역을 중심으로, 다시 북쪽과 교류할 수 있는 지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철원역이 복원되면 역사 주변인 동송읍 사요리 일대는 태풍의 눈이 될 전망, 민통선 밖의 땅은 기대치로 이미 올라 있는 상태다. 잡종지 및 전답이 평당 10만원선. 장기투자로는 민통선 안의 땅을 권한다. 땅값은 도시계획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평당 4만원선. 남북관계의 호전을 기대하고 외지 사람들이 공유지로 산 땅들이 더러 있다.

접적지역 땅은 미복구 토지 및 등기관계가 불투명한 경우도 있어 단독 필지의 땅을 사는 것이 남북교류의 덕을 직접 기대할 수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 J씨의 경우 동송읍 사요리 논을 공유지분으로 사놓는 바람에 쉽게 팔지도 못하고, 1년에 쌀 두 가마니씩 가져다 먹는 낙(?)밖에 없다고 늘 울상이다. 이 지역의 땅은 정부의 정책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므로 북한과의 교류진전에 따라 땅값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성급한 기대를 품고 있는 사람들은 경의선의 복구 공사는 25km만 이으면 되는데, 그 공사는 한 달도 안 걸린다며 금방이라도 신의주로 가는 기차표라도 살 듯이 가슴이 부풀어 있다. 파주는 신도시 일산과 이웃해 있다. 서울에서 그렇게 아득히 먼 곳이 아니다. 파주는 지금 수도권의 어엿한 생활권으로 편입될 날을 준비하고 있다. 부동산으로 일어선 사람들은 북쪽땅에서 또 하나의 승부를 걸 기회를 노리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남북간에는 조금씩이나마 기업간 교류가 확대돼 왔다. 이제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제3국을 통하던 교류가 곧바로 남북한 교역로를 이용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버려진 땅, 한수이북 땅은 때를 만나게 될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적어도 한번 이상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말이 있다. 우리처럼 변수가 많은 나라는 국내 정치 요인이나 개발계획 요인, 남북관계 요인에 의해 부동산이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수 이북의 땅에 대한 투자는 지금이 시작이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고 싶은 것은 신도시 일산 주변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질 경우 가장 빛을 먼저 볼 지역이 일산권이다.

이 일대는 ‘북쪽’이라는 점 때문에 64평형 아파트가 3억3천만원에 머무르고 있으나 경의선을 타고 기차가 북쪽으로 간다면 전혀 달라질 것이다.

어쨌든 이제 한수 이북이어서 소외돼 온 땅은 남북교류의 전진기지로서 꿈틀거리고 있다. 공기 맑고, 인심 후하고, 서울과 가까운 처녀지 한수 이북 땅에 쏟아지는 햇빛이 화사하기 이를 데 없다. 산새와 나비들만이 넘나들었던 1백55마일의 철조망을 기차가 넘나드는 날, 북쪽땅은 황금벌판으로 변할 것이다.

문의 02-538-8284· srcon@ chollian.net

김양석 중앙부동산연구소 소장 / 이코노미스트 제535호 (20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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