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초유의 정전사태, 내년이 더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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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사상 초유의 대규모 정전(停電) 사태가 터졌다. 이 때문에 국민이 겪은 불편과 불만은 대단했다. 기업과 농어민들의 피해도 상당했다. 원인은 전력 과부하였다고 한다. 전력 공급보다 수요가 더 많았다는 설명이다. 어제 전력 공급능력은 7000만㎾ 정도. 늦더위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을 초과할 게 확실해지자 전력 당국이 부랴부랴 지역별로 돌아가며 송전을 중단했다는 설명이다. 자칫했으면 전국이 동시에 블랙아웃(대규모 정전)당할 뻔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발전소 정비에 있었다. 우리나라가 발전소를 풀가동해 최대한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은 7800만~7900만㎾ 정도다. 이것만 공급했더라도 어제 같은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력 당국은 이미 영광 원자력발전소와 보령 화력발전소 등 23개 발전소를 정비하는 중이었다. 7000만㎾밖에 공급 못한 까닭이다. 물론 발전소를 1년 365일 쉬지 않고 가동할 순 없다. 통상적으로 수요가 많은 여름과 겨울이 아닌, 봄과 가을에 정비한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이상기온으로 인해 무더위가 추석 연휴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진작 있었다. 이 점을 감안했더라면 어제와 같은 수요예측 실패는 없었을 것이다.

전력 당국의 무신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과부하가 예상됐다면 국민이 대비할 수 있도록 미리 공지를 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국민의 불편과 피해는 줄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력 당국은 송전을 중단한 후 정전했다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어제 사태는 명백히 인재(人災)였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이번 사태가 없었더라도 내년 중 전력대란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근본적으로 전력 예비율이 너무 부족하다. 전력수요가 가장 많았던 지난 8월의 경우 전력 예비율은 5~8%밖에 안 됐다. 15% 정도는 돼야 안심할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예비율이 너무 낮다. 게다가 5% 밑으로 떨어지면 전국적인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어제처럼 제한 송전에 들어간다. 내년 수요는 올해보다 더 많을 게 자명하기에 내년 중 전력대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어제의 사태를 교훈 삼아 전 국민적인 절전 운동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당분간 전력공급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 지금 건설 중인 원전 등이 완공되는 2015년이 돼야 숨통을 틀 수 있다고 보면 그전까지는 수요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일본은 원전 사고로 전력공급이 부족해지자 정부가 전력 소비량을 15% 줄였다. 여기에 국민은 자발적으로 10% 더 절감해 전력 소비량이 모두 25% 줄었다고 한다. 정부는 전기요금의 인상도 신중히, 그러면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가와 국민생활에 미치는 타격이 매우 커 쉽지 않은 결정이겠지만, 전력 낭비를 막는 데는 요금 인상만 한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전력대란보다는 전력 요금 현실화가 그래도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