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로버츠의 섹시한 옷차림 논란

중앙일보

입력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가 큰 인기를 끌면서 주인공 줄리아 로버츠의 아슬아슬한 패션이 미국 사회 곳곳에서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에린 브로코비치는 개봉된 지 몇주가 지난 이번 주 박스오피스 집계 결과에서도 6위에 오를 정도로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 줄리아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한 영화. 에린이 영화속에서 뽐내던 패션은 섹시하지만 결코 고급스러워 보이지는 않는 것으로 미국 회사-특히 변호사 사무실과 같이 비교적 보수적인 업종-에서도 결코 자연스럽지는 않다.

언뜻 자유롭게 보이는 듯한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회사들은 직원들의 옷차림에 우리 생각 이상으로 엄격하다. 뉴욕 메이시등 미국의 유명백화점에서 여성의류 부문에 '캐리어(career)'라는 섹션을 마련해 두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사회도 여성직장인의 옷차림에 일정한 공식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면 에린의 노출패션에 직장상사가 잔소리하는 장면과 당당하게 쏘아 부치는 에린의 상태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에린은 영화속에서 가슴 윗부분의 굴곡을 선명하게 드러내보이는 상의에 다리 거의 대부분을 노출한 초미니스커트 차림을 한 채 굽높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회사를 휘젓고 다닌다.

소도시의 로펌에 일하는 여직원 에린은 우연히 어떤 회사가 캘리포니아 사막지역의 식수원을 오염시키려는 음모를 알게 된 뒤 하나씩 증거를 수집해간다.

이 과정에서 에린의 자극적이고 약간은 천박한 옷차림은 결정적인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에린류의 옷차림에 대해서는 미국 사회에서도 의견이 정확히 양분되는 듯하다.

하나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여성들이 자신들의 몸매나 외모를 이용해 가장 자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직장에서의 성취를 극대화하는 또다른 성의 상품화라는 지적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일하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서 입는데 누가 뭐라느냐는 식의 자유주의적인 의견이다. 물론, 결론은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무언가 말하기 좋아하는 미국사회에서 논란 자체는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다. 미국의 메이저 TV 네트워크중 하나인 ABC 방송이 저녁 황금시간대에 편성하는 시트콤 '드루 캐리쇼'등 다양한 패러디 토크쇼 프로그램에서도 에린의 옷차림이 단골 소재가 될 정도다.

한편 영화는 이와는 조금 각도가 다른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줄리아의 옷차림-미국에서는 이를 White Trash Fashion 이라고 부른다-에 소재로 사용된 옷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소매없는 가죽 상의와 블래지어, 코르셋, 미니스커트등 약간 싸구려같이 보이는 것들의 메이커는 랄프 로렌, 캘빈 클라인, 게스등으로 결코 만만치는 않다.

* White Trash Fashion: White Trash는 속어로 가난한 백인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단순한 저소득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White Trash 패션은 이들 계층이 주로 하고 다니는 옷차림으로 세련되고 섹시한 패션을 본뜨는 듯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어있고 천박해 보이는 패션을 말한다. 이와 전혀 반대 쪽의 패션을 뜻하는 것으로 GQ 패션이 있다.

* GQ Fashion: 학교나 직장에서 아주 세련되고 잘 차려입은 사람을 지칭할 때 흔히 "GQ"라고 한다. GQ는 옷차림등을 주요 화제로 삼는 남성 잡지 GQ에서 따온 것이다. GQ 잡지처럼 옷에 신경을 쓴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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