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교통 장관’ 할아버지의 추석은 따뜻했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지난 9일 서울 영등포역 앞 한 음식점에서 임진국 할아버지(가운데), 차갑선 할머니(오른쪽)가 박래웅 후원회장(왼쪽)과 식사를 함께했다.

“가족 없이 혼자 있을까봐 추석 때 먹을 거 들고 찾아왔더라고. 다 고마울 뿐이지.”

 임진국(96) 할아버지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백발이 성성하고 허리는 굽었지만 그는 이름 석자가 새겨진 교통경찰 제복을 벗지 않았다. 임씨는 1979년부터 2009년까지 30년간 서울 영등포역 부근에서 교통정리 자원봉사를 해 지역주민 사이에서 ‘영등포 교통 장관’으로 불린다. 1964년 청계천을 지나다 초등학생 3명이 유턴하던 차에 치여 숨진 장면을 목격한 뒤 충격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종로·을지로·청계천까지 더하면 봉사 햇수만 45년에 이른다.

 임씨가 경찰과 인연을 맺게 된 건 교통정리 봉사를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을 찾아가 교통경찰 복장을 얻게 되면서부터다. 영등포 일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역전파출소 경관을 양아들로 삼기도 했다.

쪽방에서 사는 임씨의 딱한 사정이 알려지면서 경찰관 등이 힘을 합쳐 ‘임진국 교통할아버지 후원회’도 만들었다.

후원회는 2006년 5월 차갑선(79) 할머니와 임 할아버지의 결혼도 후원했다. 역전파출소가 결혼식장이었고 당시 영등포경찰서장이던 정철수 현 경찰청 대변인이 주례를 섰다. 영등포역 상가번영회 회장 출신인 박래웅(70) 후원회장은 “경찰에서 임대아파트를 알아보는 등 임 할아버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등포서 송재희 경위는 “지난 9일 영등포서 소속 경찰관들과 임 할아버지 부부가 식사도 함께 하고 추석 선물로 인삼을 드렸다”며 “특별히 바라는 것도 없이 수십 년간 봉사를 해주신 할아버지에 대해 존경심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이지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