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아파트의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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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내 산업계의 최대 이슈는 ''사이버아파트’다. 지난해 인터넷 접속환경을 구축한 제1세대로부터 시작된 사이버아파트 붐은 이제 사이버 공간에 지역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제2세대 사이버빌리지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사이버아파트 붐의 발전과정과 미래를 짚어본다.

주택보급률이 90%에 이른 현실에서 살기 좋은 아파트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건물 모양에서 벗어나 40층 이상의 초고층 아파트가 선보이는가 하면 외국 영화나 SF영화에서나 볼 만한 화려한 고급 아파트도 나왔다.

그러나 지금 주택건설업계의 화두는 이러한 초호화 아파트의 인텔리전트 빌딩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의 50% 이상이 살고 있는 아파트,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을 위한 새로운 공동체문화가 태동하고 있는 ‘사이버아파트’다.

''사이버아파트’라는 용어가 대중적인 관심을 끈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삼성이 ‘싸이버아파트’라는 브랜드로 국내 주택시장에 처음 선보인 이래 전세계에 휘몰아친 인터넷 붐을 타고 사이버아파트는 이제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조건이 되어버렸다.

이에 따라 주택건설업계도 올들어 본격적으로 사업모델을 구축하고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는 인텔리전트 빌딩에나 적용할 수 있었던 기술과 정보들이 ‘가정’에서도 비교적 손쉽게 구현할 수 있게 되면서 미래의 주력사업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뜻한다. 이에 맞물려 인터넷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부의 계획(정보통신부가 주도하는 사이버코리아21 프로젝트)도 이러한 추세에 힘을 더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처럼 사이버아파트 열풍은 과거 아파트의 ‘재산’가치를 판가름했던 교통·입지·주변환경 등 물리적 기준과는 완전히 다른, ‘초고속 정보서비스의 유무’라는 새로운 ‘기능적인’ 기준을 만들어내고 있다.

1세대 정보통신아파트에서 사이버공동체로 전환

최근 많은 건설업체들이 사이버아파트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인터넷 전용회선만 깔면 과연 사이버아파트인가” 하는 문제제기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사이버아파트라는 것이 단순히 기존 아파트에 광통신망 등 인터넷 전용 고속회선을 설치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개념에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네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유형(有形)의 인프라로서 네트워크 장비
둘째, 이를 통해 네트워크상에 구현되는 시스템장비(웹서버·어플리케이션 등)
셋째, 이와 관련하여 디지털의 형태로 표현되는 지역 생활정보로서의 컨텐츠
넷째, 이러한 기반하에서 무형(無形)으로 형성되는 커뮤니티

현재 주택건설업체들이 표방하고 있는 사이버아파트는 엄격히 따지자면 정보통신부가 인정하는 초고속 정보통신아파트다. 즉 정보통신부가 정한 일정기준 이상의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갖춘 아파트에 불과하다.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설치하고 인터넷에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면 정보통신부에서 엠블렘(등급을 매긴 별표)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통신아파트를 제1세대라고 한다면 결국 제1세대는 제2세대를 위한 기반으로서 ‘속도’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많은 아파트들이 광케이블을 설치하고 이를 근거로 사이버아파트임을 강조했지만 그러한 인프라 위에서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는 보잘 것 없었다.

그러나 올 들어 주택건설업체들은 일제히 ‘사이버공동체’ ‘사이버커뮤니티’ 또는 ‘사이버빌리지’로 초점을 전환하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사이버공동체는 기존의 사이버아파트처럼 하드웨어적 차원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환경을 포괄하는 생활편의 자체를 소프트웨어화한 운영체계와 지역 커뮤니티의 완성이라는 측면에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다.

이는 아파트라는 생활공간 속에서 인터넷이라는 인프라를 통해 각 가정이 적극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 지역공동체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어 불필요한 시간·공간상의 불편함을 제거해 나갈 수 있다. 아파트단지의 홈페이지에 공동체 구성원들이 스스로 의견을 제시하고 필요한 사항을 요구하며 또 여론을 모아 문제점들을 수정해 나간다. 이때 이 지역공동체의 네트워크 관리자는 사이버빌리지 속의 공동체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즉각 반응해 나간다.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사이버빌리지

사이버빌리지 주민들은 네트워크상에서 서로간의 의사소통(Communication)을 통해 다양한 공동체(Community)를 만들어간다.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존재하는 이 공동체들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정보(Contents)들을 요구하게 되고 이러한 필요에 따라 구성된 정보들은 시장(Commerce)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주민들간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사이버빌리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택건설업체들이 사이버공동체에 눈을 돌리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사이버빌리지의 컨텐츠는 다양하다. 생활의 기반이 되는 의식주에 관련된 정보에서부터 주민 개개인의 취미와 욕구까지 반영할 수 있다. 이는 주민들의 욕구를 인터넷이라는 기반 하에서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가능해진다.

좀더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주민들이 쓸 생필품을 주문(인터넷 쇼핑)하고 결제(전자상거래)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주민들의 취미생활을 위한 모임(동호회 활동)이나 근접권 지역정보, 공동 생활정보, 정보검색 등과 같은 서비스는 모두 사이버공동체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 아파트단지내 관리상의 불만이나 하자보수 신청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으며 공동민원은 게시판을 이용하여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함으로써 해결 방법을 마련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이버아파트 열풍은 주거생활의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초고속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게 됨으로써 국민들은 정보화시대에 한발자국 더 가깝게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정보화에서 소외되었던 주부나 노인들도 보다 편리하게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대중의 소비패턴까지 변화시키기에 충분하다. 공동체의 소비정보가 공유되고 인터넷 기반의 정보들은 빠른 속도로 파급된다. 결국 이런 이유로 생산자와 정보제공자들은 소비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힘으로 개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네트워크 관리자는 이를 위해 공동체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이를 보상하는 피드백 시스템을 개발, 제공해야 할 것이다.

최근 아파트단지 내의 상점들은 서비스와 상품의 질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역시 지역 커뮤니티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친절한 서비스나 비싼 가격을 받는 상점이라면 이제 공동체 내에서 공유되는 정보들로 인해 짧은 시간 내에 확산된다. 그 결과 지역주민들은 그런 상점에 등을 돌리게 되어 상점은 점차 경쟁력이 떨어져 결국 폐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초기에 이런 여론에 무관심했던 몇몇 상점들은 동네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살아남은 상점들은 지역주민들의 여론과 취향을 살피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 PC통신상에서 위력을 발휘하던 네티즌의 힘이 이제는 사이버아파트 또는 아파트 주민공동체라는 지역 커뮤니티로 확대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정보사용자이자 제공자인 사이버공동체의 구성원들

이러한 편리함 가운데에도 문제는 있다. 대단위 아파트단지 단위로 이렇게 사이버공동체가 구성된다는 것은 과거 우리의 아파트문화가 획일화되었던 것처럼 수백가구를 똑같은 생활패턴으로 묶어버리게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특정 사이버아파트에 입주하는 주민들은 최초의 분양신청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선택권을 갖는다고 할 수 있을지라도 입주 후에는 업체에서 일방적으로 설정해놓은 사이버 공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경우 사이버공동체를 통해 개인의 요구가 반영되기는 커녕 획일화된 서비스 이용을 강요당하는 셈이 되어 사생활의 일정부분을 틀에 짜맞추는 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이버공동체의 역할은 중요하게 부각된다. 초기 구축단계에서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중에도 주민의 의견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목소리에 재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유연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이버공동체 운영을 맡게 될 서비스업체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들 각자에게도 보다 능동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이버빌리지 또는 사이버커뮤니티의 현실화는 다소간 적응기간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 현재 업계에서 추진하고 있는 서비스체계가 어느 정도 갖추어지고 실행될 때 그러한 서비스 기반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공동체 내부의 의견수렴과 반영, 주변시설과의 연계, 홈뱅킹이나 인터넷 전자상거래상의 보안문제 등이 해결됨과 동시에 지속적인 공동체 내부의 교육이 뒷받침될 때 우리가 그리는 새로운 세상은 상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미래의 모습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현실은 정보를 사용하는 공동체로서, 동시에 정보의 제공자로서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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