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경제 view &] 3D 업종으로 전락한 IT서비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이재술
딜로이트 총괄대표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전쟁이 한창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첨단기기 패권을 놓고 격돌하고 있는 정보기술(IT) 업계의 두 거목이 이번에는 특허와 디자인 등 무형자산의 소유권을 두고 일전을 치르고 있다.

 아직 결말을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지금까지는 애플이 좀 더 점수를 벌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네덜란드 법원은 ‘삼성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애플의 주장을 일부 인용해 갤럭시 스마트폰의 판매 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잘 알려진 대로 삼성전자는 TV·휴대전화·반도체·LCD 등 IT 하드웨어 부문에서 글로벌 최강자다. 매출기준으로 세계 최대 IT기업이기도 하다. IT뿐 아니라 자동차·조선 등 상당수 제조업 분야에서 우리 기업의 하드웨어는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다.

 그러나 이처럼 눈에 보이는 제품의 경쟁력은 최고 수준이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의 기반은 대단히 취약하다. 문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아이폰의 약진은 뛰어난 제품성능 외에 수만 개의 응용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과 사용자 중심의 서비스가 뒤를 받쳐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언제부터인가 소프트 파워를 키우고 서비스산업을 육성하자는 소리가 높다. 맞는 말이다. 제조업 중심의 수출지향 구조로는 더 이상 지속성장이 힘들다. 더구나 우리 주력산업 대부분은 시설투자 위주의 장치산업으로 성장과 투자가 이어져도 고용은 많이 늘지 않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반면 서비스 산업은 투자 대비 고용창출 효과가 큰 데다 만들어내는 일자리의 상당수가 양질이다.

 이미 세계경제는 상당한 수준의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 경제가 전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데다 신흥국 역시 경기둔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내수시장 확대와 서비스산업 육성에서 우리 경제의 돌파구를 찾아야 할 이유다.

 최근 정부가 각종 법규와 정책을 통해 서비스산업 육성에 발벗고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의욕과 기대에 비해 효과가 신통치 못한 것은 서비스로 대표되는 무형 자산에 대한 사회 일반의 그릇된 인식에 기인한다. 눈에 보이는 상품에는 제 값을 지불하지만 무형의 서비스에는 인색하다. 정부부터 IT 컨설팅 등 조달입찰에서 최저가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대기업계열 IT업체들이 싼 값에 정부조달을 돌아가며 수주한 뒤 더 낮은 가격에 하청업체에 떠넘긴다.

 이런 구조 탓에 상당수 중소 IT서비스업체는 이미 3D 업종으로 전락했다. 대기업계열사는 안정된 물량을 쌓아두고 땅 집고 헤엄치기 식으로 영업하지만 중소업체는 하루하루 버티기가 어렵다. 어쩌다 쓸 만한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그램을 개발해도 대기업에 싼값에 뺏기는 일이 허다하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지적처럼 IT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동물원에 갇힌 지 오래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엄격한 먹이사슬에 묶여 비좁은 생태계에 갇혀 있다 보니 경쟁력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싼 가격에 매달리다 보면 본연의 사업경쟁력을 키우는 게 요원하다.

 현재의 업계 먹이사슬을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재구축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가격보다는 서비스의 질로 경쟁하는 풍토를 만들고,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구태를 지양해야 한다.

 먼저 이를 뒷받침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정부의 입찰 규정이나 선정방법이 바뀌어야 한다. 기술평가를 통해 질적 경쟁력을 갖춘 회사를 복수 선정한 뒤 이들에게서 가격제안을 받아 최종평가를 내려야 한다. 비단 IT 서비스뿐 아니라 광고·물류·컨설팅 등 다른 서비스 분야에서도 품질 경쟁력을 갖춘 업체가 성장하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의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프트 경쟁력이 필수적이다. 무형의 서비스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려는 정부나 기업의 인식전환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경쟁력 있는 서비스산업이야말로 일자리 창출과 내수시장 확대의 초석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재술 딜로이트 총괄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