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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그리스 재정위기가 던지는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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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몇 달 전 “미국 경제의 회복은 그리스 위기의 성공적 진화 여부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유럽 변방의 보잘것없는 나라가 어떻게 유럽은 물론 미국, 나아가 글로벌 경제까지 쥐고 흔들게 되었는가. 17개국(유로존)이 유로라는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데서 비롯됐다. 나라마다 재정 상태가 매우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통화를 쓰는 모순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것이다. 과거 유로존 출범을 논할 때 영국 정부는 “후진적이고 혼돈스러운 그리스가 가입하면 유럽의 재원을 한없이 축내는 큰 짐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영국은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았고 그리스를 받아들인 유럽연합(EU)은 오늘날 영일(寧日)이 없다. 유럽이 흔들린다 해도 다른 경제축이 튼튼하면 완충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니다.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로 미국의 신용등급은 최고에서 밀려났다. 게다가 지난달 미국의 고용 증가는 제로에 머물면서 더블딥(이중 경기침체) 우려는 더욱 높아졌다.

 그리스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국민의 반대를 설득하지 못해 재정긴축 약속도 팽개쳐버린 상태다. 그 여파는 회원국에 바로 파급된다. 가장 많은 돈을 빌려준 이탈리아가 이미 제단에 올랐다. 10년 만기 국채 이자율이 5일 연 5.6%를 기록했다. 이탈리아가 흔들리면 스페인도 따라 물려들어가는 구조다. 폭풍은 유럽 상업은행을 흔들고 있다. 은행들이 이들 나라의 국채를 다량 안고 있기 때문이다. “남유럽 국가들이 보유 중인 국채를 손실처리하면 많은 유럽 은행들이 파산할 것”이라는 요제프 아커만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의 말이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재정위기에 대비해 유럽 은행들이 확충해야 할 자본금은 2000억 유로에 이른다고 국제통화기금(IMF)은 밝혔다. 은행주를 중심으로 유럽 주요국 증시가 추풍낙엽 신세가 된 이유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재정통합 없이는 유로체제가 지속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지만 제 발등의 불 끄기에 바쁜 회원국들에겐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4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또 참패하면서 정치적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를 지원해온 구제금융정책에 독일 국민이 등을 돌린 것으로 풀이된다. 독일마저 돈줄을 조이면 유로체제는 버티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부분 붕괴론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그리스와 포르투갈은 국가 부도를 면키 어렵다”고 진단한다. 구제불능 국가를 유로존에서 탈퇴시킨 뒤 상태가 호전되면 다시 받아들이는 방안이 이미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남유럽 재정위기는 들어올 돈은 생각지 않고 마구 써버리다 곳간이 텅 빈 결과다. 이들 나라는 사회복지예산이 정부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고 정책을 되돌리려 했으나 이미 단맛을 본 국민의 저항에 부닥쳤다. 무상 시리즈니 보편적 복지니 하며 그럴 듯한 이름을 붙인 복지정책이 난무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에 던지는 경고장이다.